돈이 있는 곳이 바로 거기니까
정말 그럴까?
1923년 1월 프랑스와 벨기에 군은 석탄과 철강 산지로 알려진 독일 루르 지방을 점령했다.
독일이 1차 대전을 종결지으면서 합의한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부채 상환을 1922년 한 해 동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와 벨기에가 정말 돈을 원했다면 석탄 광산이나 제철 공장보다는 은행을 점령했어야 옳지 않을까?
미국의 유명한 은행 강도 윌리 서튼이 왜 은행을 털었냐는 질문에
“돈이 있는 곳이 바로 거기니까.”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처럼 돈은 은행에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두 나라는 은행으로 가지 않았을까?
바로 독일의 인플레이션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1922년 여름 이후,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1922년 하반기 6개월 사이에 생활비 지수가 16배나 오를 정도였다.
물론 프랑스와 벨기에의 무리한 배상금 요구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주된 요소 중의 하나였지만,
일단 이런 현상이 시작되자 두 나라는 어디까지 가치가 떨어질지 모르는 쓸모 없는 종이쪼가리 보다는
석탄과 철강 같은 실물 배상금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루르 지역을 점령한 것이다.
옳은 판단이었다. 두 나라가 루르 지역을 점령한 후 물가는 정말로 통제 불능이 되어
1923년 11월 새로운 화폐 렌텐마르크가 도입되기까지 100억 배가 뛰었으니까.
(오타가 아니다. 100배나 100만 배가 아니라 100억 배가 맞다.)
독일의 이 하이퍼인플레이션 경험은 독일과 세계 역사 발전에 크고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일부에서는 이 하이퍼인플레이션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자유주의 체제에 대해 불신이 생겼고
결국 그것이 나치세력의 등장을 불러왔다고 주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이 해석을 받아들이면 1920년대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2차세계 대전을 부른 주요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암묵적으로나마 인정하는 것이다.
이때의 아픈 상처를 잊지 못했는지 2차 대전 후 설립된 서독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통화 팽창 정책을 지나치게 피한다는 평판을 얻었다.
유럽 단일 통화 유로가 채택되어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후에도
유럽중앙은행(ECB)은 분데스방크의 영향을 받아 높은 실업률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긴축 통화 정책을 고수했다.
이런 행태는 2008년 세상을 휩쓴 금융 위기로 말미암아 전 세계 거의 모든 중앙은행이
전례없는 통화 완화 정책을 감행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보면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거의 1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독일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 나아가서는 전 세계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장하준 지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김희정,안세민 옮김, p82~84,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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