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사면체의 집합'. 중국의 옛 황궁 자금성(紫禁城)을 일컫는 말이다. 구중궁궐 속의 각종 건물을 필두로 황제가 신하를 만났던 조례(朝禮) 마당, 전각을 받친 축대가 모두 사면체다. 배치 또한 황궁의 축선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다. 축선은 베이징 옛 성곽의 정남문 격인 영정문(永定門)에서 북쪽 끝 종루(鐘樓)까지 8㎞에 이르는 선이다. "자금성의 축선을 타고 흐르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질서의식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임을 보여준다." 현대 중국의 최고 건축가인 량쓰청(梁思成)의 극찬이다.
베이징의 전통가옥 사합원(四哈院) 역시 네모반듯하다. 모든 게 좌우 대칭인 '방형(方形)' 구조다. 이 같은 네모 구조는 중국 관가의 언어 의식에도 나타난다. 4자성어가 대표적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 '퇴경환림(退耕還林.논밭을 다시 숲으로 만든다)' 등 네 글자로 만든 성어는 두 글자씩 뗄 수 있는 좌우 대칭 구조다. 두 글자는 주(主)와 보(補)로 나뉘며 각 글자가 한 구석씩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4자성어는 네모꼴이다.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성어식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문자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백성에게 행정의 지침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겐 네모꼴의 사자성어가 알아듣기 쉽다는 이야기다.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 문화엔 네모의 방(方)과 동그라미의 원(圓)이 함께 있다"는 말을 곧잘 한다. 전자는 매사를 원칙과 계획대로 추진하는 '네모 머리(方腦殼)'로 표현된다. 후자는 임기응변에 능한 '원활(圓滑)'로 나타난다.
질서와 위계로 상징되는 중국 관가, 또는 사합원에 거주하는 상류층 등 지식인 문화의 주류를 이뤘던 것은 네모꼴 문화다. 네모꼴에 대한 선호는 자리와 질서 의식으로 이어진다. "중국에서 부처 간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부처 내의 각 영역도 고유의 업무와 권한에 관한 구획이 분명하다." 중국 관리들을 오래 접촉해온 사람의 말이다. 그는 "북한 신의주특구 장관이었던 양빈(楊斌)이 한번에 무너진 게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중국이 정한 '단둥(丹東) 인근은 개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고금을 막론하고 중국 지배층이 활용해 온 통치 수법을 관류하는 공통점이 있다. 자리와 원칙을 엄격히 지켜 중앙과 지방의 무수한 행정체계를 한데 엮어 간다는 점이다.
네모꼴 문화는 앞뒤가 꽉 막힌 형식주의에 매몰되는 문제점을 곧잘 드러냈다. 명.청 시대의 과거시험용 문장 형태인 '팔고문(八股文)'은 단락과 행의 글자 수와 운까지 모두 맞춰야 한다. 시가 아니라 산문인데도 격식이 무척 까다로웠다.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기엔 매우 불편하다. 이처럼 형식의 아름다움을 고집했던 팔고문은 당시 관청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인간의 진실을 충실히 전하지 못한다는 약점 때문에 팔고문이란 문장 형식은 끝내 죽어버렸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kjyoo@joongang.co.kr>
2004.09.02 18:54 입력 / 2004.09.03 07:36 수정
'인문학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체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중국인 (0) | 2020.10.14 |
---|---|
국회의원 직업은 자동화가 영원히 안 된다. (0) | 2020.10.14 |
제3세계의 남성은 여성의 서구화를 막기 위해 그것에 매우 부정적인 요소를 부여한다. (0) | 2020.09.16 |
여성은 상징하는 표지에 머문다는 점 (0) | 2020.09.16 |
한국의 수입업자와 미국 축산농 간의 동질성은 은폐된다. (0) | 2020.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