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경축사 꼬랑지가 사라진 까닭
시인 고은은 시 전문지 「시평」기고글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현저하게 줄었다.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 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아마 두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직원들에게도 금주하기를 권했다. 특히 담배 냄새 나는 장관이나 수석들은 자기 관리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물론 직접 표현은 안 했지만, 킁킁 냄새를 맡는 시늉으로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그래서 흡연자가 대통령을 뵈러 갈 때는 양치질은 물론 가글까지 하는 게 필수였다. 하물며 술 냄새야.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개방적이었다. 심지어 인수위원회 직전까지만 해도 당선자와 같이 담배 피우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임기 초,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람과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통령이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러면서 동석한 연하의 그 사람에게 그런다.
“이제는 같이 담배 피우는 것 안 됩니다. 내가 대통령이니까.”
우스갯소리를 한 후, 그래도 미안한지 한 마디 덧붙인다.
“너무 야박하지? 한 대만 피우게.”
그 이후에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몇몇 사람들에게 담배 피우는 게 허용됐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뿐이었다. 공식일정 때는 일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이전 대통령에게는 전매청에서 대통령 전용 담배를 만들어 공급했다. 금색 봉황 휘장이 그려진 담배였다. 물론 담배 품질도 최고 등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국산 ‘에쎄’와 ‘아리랑’, ’클라우드9’을 피웠다. 라이터도 시중에서 파는 500원짜리 일회용을 썼다.
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 역시 술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와인이나 민속주를 한두 잔 거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각종 술의 유래와 제조 방법 등에 관해선 어찌나 해박하던지. 술자리는 대통령의 술 얘기만으로도 흥이 났다.
술 예찬론을 펴는 문인들이 많다.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술만큼 좋은 것은 없다. 술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묘약이니까. 하지만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건 문제다. 그건 반칙이다. 청와대 시절 체득한 음주 작문의 폐해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두 토막을 소개한다.
2006년 11월, 독일 유력지「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의 요청으로 대통령이 ‘역사는 진보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준비할 당시였다. 어느 날 오후, 예정에 없이 대통령이 찾는다. 그날따라 점심에 반주로 술 한잔했다. 찾아뵈러 가니 부속실 직원이 술 냄새가 너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대통령이 회의실에 왔다. 한두 마디 건네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오늘은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안 되겠으니 다음에 하세.”
술 냄새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 내색을 안 한다. 아랫사람 무안할까 봐. 아니 문책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어찌나 죄송하던지.
2005년.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준비할 때였다. 천신만고 끝에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연설문 작성이 마무리됐다. 대통령과의 독회만 일고여덟 차례. 서너 개 버전의 연설문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광복절 연설문 준비는 1년 중 가장 큰 전투다. 남들은 휴가를 떠나는 한여름에 더위와 싸워가며 악전고투해야 한다. 보름 정도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식욕도 뚝 떨어진다. 오직 자나 깨나 8월 15일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 오죽하면 요즘도 광복절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짓눌린 느낌을 받을까.
드디어 그날을 하루 앞둔 8월14일 저녁 무렵.
“아쉽지만 일단 이 정도로 마무리하세. 계속 붙들고 있으면 끝이 없겠네.”
대통령의 이 한마디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연설비서관실 모두 삼청동 술집으로 달려갔다. 소주를 두 병 가까이 마셨을 즈음. 대통령이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밤 10시가 넘었다.
“근데 말이야. 경축사 끝 부분 수정 좀 하세.”
눈빛으로 메모지를 찾았다. 행정관 한 사람이 식당 메모지를 가져왔다. 한두 마디 할 줄 알고 적기 시작한 것이 40분을 훌쩍 넘었다.
“이렇게 고쳐서 내일 아침 일찍 보세.”
술집을 나와 비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사무실에 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절대고독!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그랬다. “사랑하는 아내가 원고지 한 장 대신 써줄 수 없고. 사랑하는 아들도 마침표조차 대신 찍어 줄 수 없는 게 글쓰기.”라고. 전화는 나 혼자 받았으니. 행정관들은 대통령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문제는 내가 쓴 메모이지만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고 났다 싶었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연설 계기인 광복절에. 그것도 대형사고를 말한다. 걱정에 앞서 자괴감이 들었다. 대통령은 늦은 시간까지 고심하다 이거다 싶어 전화까지 했는데, 술 먹다가 이 지경이 됐으니. 결국 글자 해독을 포기하고 창작에 들어갔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대통령이 고쳐줄 터이니 평소 하던 말씀을 참고해서 연설문을 써 나갔다. 밤을 꼴딱 새우고 오전 7시 전에 관저에서 대기했다. 대통령이 들어왔다.
“왜? 어제 내가 다 불러주지 않았든가.”
“한번 보자고 하셨습니다.”
“됐다 마 . 어련히 알아서 잘 썼을라고. 이제 신물 나다. 치와뿌라.”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보여드릴 수도 없지 않은가.
사무실로 내려와 TV를 켰다.
몇 시간 후에 있을 광복절 기념행사 실황중계를 기다리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침내 바로 그 대목. 대통령이 수정을 지시했던 연설의 마무리 부분을 읽는다.
원고를 읽는 대통령의 눈빛을 뚫어져라 봤다.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 잘못 썼구나.
하지만 대통령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 후에도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터무니없이 잘못 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다.
세월이 흘러 퇴임을 6개월여 앞둔 오찬 자리.
비서관들과 식사를 하다가 2005년 광복절 얘기가 나왔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다가 청천벽력 같은 대통령의 한마디.
“그 때 말이야. 다 좋았는데 연설문 꼬랑지가 사라졌어. 분명히 내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서 나를 바라봤다.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른 체해 줬을 뿐.
술 마시고 글 쓰면 안 된다.
「강원국,대통령글쓰기,p132~137,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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