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는 그들만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매력을 부모나 조부모만큼 알아주는 대상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아기가 몹시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기에게 매력이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포유류의 임신 기간은 전반적으로 뇌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뇌 조직은 일정한 비율로 커진다.
따라서 뇌가 더 크기를 바란다면 뇌가 더 오랜 기간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뇌의 크기가 큰 종들은 일반적으로 임신 기간도 길다.
사실상 아기가 태어날 시기를 결정짓는 것은 아기 자신이다.
생물학계에서는 이것을 ‘운전대를 잡은 아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문제는 뇌의 크기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 전반에 나타나는 기본 패턴을 따른다면 인간의 임신 기간은 21개월이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실제 임신 기간은 9개월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조상은 커다란 뇌를 진화시키기에 앞서 먼저 직립보행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진화시켰다.
그 결과 골반의 모양이 상당히 독특한 사발형이 되었다.
사발형 골반은 분명 원숭이나 유인원의 길쭉한 골반과 다르다.
사발형 골반은 몸통과 머리, 특히 뇌가 점점 커지는 머리를 지탱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오늘날 인간의 자궁 모양은 호모에렉투스 출현 이래 2만여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호모에렉투스가 직립보행을 했으며 먼 거리를 이주하는 능력을 개발했음을 상기하자.
진화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는 공학적으로 완벽한 신체 구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위에서 언급한 이익을 얻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희생 중 하나가 약한 허리였다.
물론 진화 과정에서 허리를 아주 튼튼하게 진화시키거나 그 부분에 뼈의 비율을 아주 높이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했다면 가눠야 할 몸의 무게가 늘거나 지금보다 훨씬 덜 유연했을 것이다.
유연한 척추는 인간의 보행 패턴에서 아주 중요한 특징이며,
고기를 얻기 위해 야생동물을 창으로 찔러야 했던 우리의 수많은 조상에게도 당연히 중요한 특징이었다.
사발형 골반과 약한 허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맛이 가기 쉬운’ 허리는 인간이 치러야 할 어쩔 수 없는 대가인 셈이다.
직립보행에 적합한 신체 구조로 진화하고 나서 수백만 년이 지난 뒤
그들의 후손이 뇌의 크기를 크게 진화시키려고 하자 사소한 문제가 불거졌다.
골반의 모양이 사발형으로 바뀌면서 산도birth canal가 극적으로 좁아졌던 것이다.
좁아진 산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태어날 아기의 뇌 크기였기 때문에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조상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제한적이었다.
물론 재빨리 마음을 바꿔먹고 큰 뇌를 갖겠다는 야무진 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화상 제자리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했다.
급격한 기후의 변화로 세계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은 시기였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멸종의 길로 치닫던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생태학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것을 의미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했고 새로운 환경에 재빨리 적응해야 했다.
우리의 해결책은 바로 커다란 뇌였다.
커다란 뇌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생존을 위한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조상은 21개월의 임신 기간을 9개월로 대폭 줄였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하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으니 바로 뇌의 발달이 절반만 진행된 상태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기가 상당히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걸 의미했다.
새끼 원숭이와 유인원들은 생후 몇 시간 또는 며칠 만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인간의 아기는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꼬박 1년, 즉 잃어버린 12개월을 필요로 한다.
새끼 원숭이나 유인원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엄마 뱃속에 머물러 있어야 할 21개월을 다 채운 뒤에도
혼자 생존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 아기들이 나중에 부진한 학업 성적, 신체적 문제 등을 비롯한 발달 과정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모든 아이가 이런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아이들에게 위험 요소가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정상적인 인간의 아기가 부모의 깊은 관심과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는 기간은 생후 약 1년이다.
부모 입장에서 그러한 관심과 보살핌은 고된 노동이다.
따라서 아기들은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과 매력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그 중 하나가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미성숙한 아기가 남편을 옆에 붙잡아 주는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다.
단 아기가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다.
아빠를 쏙 빼닮은 아이를 낳거나 그 누구도 닮지 않은 아이를 낳는 것이다.
첫 번째 대안은 아기가 아빠의 친자식인 한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두 번째 대안이 더 나을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아기들은 성인에 비해 생김새가 모두 비슷비슷하다.
사실 어찌나 비슷한지 서양 아기들의 눈동자는 모두 푸른색이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면서 갈색이나 초록색으로 바뀐다.
그러니 아빠들은 계속 궁금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결할 길 없는 이런 불안감을 심리적인 방법으로 해소한다.
갓난아기 곁에 갈 기회가 생기면 주변의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라.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의 마틴 데일리와 샌드라 윌슨은 한 연구를 통해
아기의 엄마와 외조부모는 아기의 아빠가 나타나면 아기가 얼마나 그를 닮았는지 강조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얘 좀 봐봐, 정말 당신 눈, 코, 이마, 뺨 …을 쏙 빼닮지 않았어?”
이것은 캐나다인이나 유럽인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다.
멕시코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하지만 아기의 얼굴에는 부모의 얼굴과 닮은 구석이 없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아기 아빠에게는 눈에 불을 켜고 아내를 닦달해야할 이유일지 몰라도 모두에게는 잘된 일이다.
[로빈 던바 저, 김 정희 역, 발칙한 진화론, pp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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