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자를 쪼개 보자.
큰 ‘口’는 둘레 곧 국경이다. 작은 ‘口’는 입 곧 인민이다. ‘戈’는 창 곧 군대다. ‘一’는 땅 곧 영토다.
모두 ‘나라’를 이루는 요소다.
그런데, ‘國’자에는 나라를 이루는 세 요소인 ‘인민·영토’만 있고, ‘주권’은 없다.
그래서 ‘國’을 중국에서는 “작은 나라(큰 나라는 邦), 제후 나라, 고향, …” 따위 뜻으로 쓰고, 일본에서도 ‘국·방’을 ‘구니’라고 하되 “땅(대지), 나라땅·나라, 행정구역 단위, 시골, …” 따위 뜻으로 쓴다.
우리는 ‘國’을 ‘나라’라고 새기지마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國’이 ‘나라’라는 말 구실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중국에서는 ‘國家’라는 억지말을 만들었다. 일본도 그것을 따른다. 뜻으로는 ‘나라’가 아니라 ‘나랏집’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가’에 “토지·인민·주권의 세 요소를 갖추어야 하고, 그 중 하나라도 빠지면 ‘국가’ 자격을 잃는다”(중문대사전)고 뜻을 매겨 억지로 쓰기로 했다. 답답한 나라들이다.
우리는 ‘나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①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갖춘 사회. ②‘누리, 동산’이라는 뜻으로, ‘꿈나라, 달나라, 별나라, 하늘나라’들로 쓰고, 아무 불편이 없다.
그런데도 국어사전에는 ‘나라’를 내세우거나 ‘국가’를 내세우거나 한다. 어슬픈 ‘국가’보다는 완벽한 토박이말 ‘나라’를 쓸 일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컨트리(country)나 스테이트(state)를 쓰고, 그 밖의 나라들에서도 랜드(land)나 파이스(pais) 같은 말은 써도 ‘국가’ 같은 것은 안 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한겨레 200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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