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철학 등

뻔뻔한 인디언(Indian Giver)

휴먼스테인 2020. 6. 26. 01:43

1550년대 브라질을 방문했던 장 르리(Jean Lery)라는 프랑스 위그노 교도는 호전적인 우에타카 족의 특이한 거래 행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다른 부족, 이를테면 투피남바 족이 우에타카 족과 거래를 하고 싶으면 우선 멀리서 거래 물품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우에타카 족도 그렇게 한다. 이렇게 해서 만약 양쪽이 거래에 동의하면 투피남바 쪽에서 한 사람이 나와 교환할 물건, 예를 들어 녹색 돌을 200걸음쯤 떨어진 바위 위에 올려놓고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에는 우에타카 쪽에서 한 사람이 바위까지 걸어와 돌을 집어든 다음 깃털 장식을 올려놓고 다시 자기 자리로 간다. 이제는 투피남바 쪽에서 깃털 장식을 가져가려고 다시 바위로 간다. 이때부터 거래는 흥미로워진다. “양쪽이 교환한 물건을 갖고 처음 장소로 돌아가는 순간 휴전 협정은 깨지게 된다. 지금부터는 누가 상대방을 붙잡아 그가 갖고 있는 물건을 빼앗느냐만이 문제가 된다.” 보통은 그레이하운드처럼 빨리 달리는 우에타카 족이 싸움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르리는 유럽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그래서 뒤뚱거리는 통풍 환자처럼 발이 느린 유럽인들이 물건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우에타카 족과 물건을 교환하거나 거래하는 일은 삼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에타카 족은 확실히 예외에 속했다. 대부분의 투피 족은 흔쾌히 얼마간의 물건을 거래했으며, ‘뻔뻔한 인디언[1]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많은 물건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사유재산이나 상품, 욕심 같은 개념도 없었다. 르리는 포르투갈인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브라질우드를 찾아온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한 나이 든 원주민과 대화를 하면서 이런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 원주민은 당신들 나라에는 나무가 없소?”라고 물었다. 르리가 브라질우드는 땔감이 아니라 염색에 쓰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이번에는 나무가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를 물어왔다. 르리는 우리 나라에는 당신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옷과 칼, 가위, 거울 따위를 가진 상인들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 투피족 원주민은 그의 말을 한동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말한 그 부자 말이오. 그 사람은 죽지 않소?” 프랑스인들 역시 죽는다고 믿었던 노인은 상인이 죽은 다음 재산이 어떻게 되는지를 궁금해 했다. 르리는 재산은 상속자들이 물려받게 된다고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당신들 프랑스인은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소. 당신들은 바다를 건너와 불편하게 생활하면서, 당신들 자식이나 당신들보다 오래 살 사람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는구려. 당신들을 기른 땅은 후세도 먹일 만큼은 기름지지 않소? 우리한테도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있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땅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먹여준다는 걸 알고 있소.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걱정 없이 쉴 수 있소.”

 

「케네스 포메란츠ㆍ스티븐 토픽 지음,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p62~64, 심산출판사」

 

 


[1] 뻔뻔한 인디언(Indian Giver): 선물을 받았을 때 더 값어치 있는 선물을 돌려주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풍습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말. 인디언들에게 선물은 단순한 사용가치 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며 사회적 유대를 두텁게 해주는 역학을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선물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기의 백인 정착민들은 이처럼 상호주의적인 풍습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오해에서 ‘Indian Giver’라는 말이 선물을 주고 나중에 더 큰 것을 요구하는 뻔뻔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