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것이 정의에 부합할까?
오늘날의 현대 경제가 금본위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금 투기꾼들과 금융 음모론자들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경제의 규모를 금 보유량(=통화량)수준에 맞추기 위해 경기를 침체시키고 실업률을 증가시키는 긴축정책을 써서 경제를 마이너스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대공황 때 그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결국 금본위제가 포기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 드골이 제안했던 것처럼, 금의 구매력을 여러 배로 높이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경제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금의 가치를 폭등시켜서 통화량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당시 드골은 금을 잔뜩 보유한 프랑의 이익을 위해 이와 같은 방식을 주장했고, 오늘날의 금융 음모론자들과 금 투기꾼들도 이와 같은 방식을 주장한다.(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남아공을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금 생산량 중 남아공이 50%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매년 새로이 생산되는 전 세계 GDP 중 50%가 남아공의 차지가 된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은 상태가 정의에 부합할까?
금을 정직한 화폐라고 생각하고 ‘금본위제 =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금이 생산되지 않는 한반도에서 5천만 명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1년 동안 온갖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생산물들은 남아공 사람들이 금으로 사주지 않는 한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땅 속에서 파낸 금만이 가치를 갖는 것이고, 사람이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생산물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이와 같은 상태가 정의에 부합하는가?
정의 여부를 떠나서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금은 정직한 화폐가 아니며, 금본위제는 정의로운 제도가 아니다.
과거에도 정직한 화폐였던 적이 없고, 금본위제가 주장될 때는 언제나 영국의 이익,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 주장되었던 것이고, 오늘날에는 금 투기꾼들의 탐욕을 위해 주장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짓논리를 그럴듯한 대의명분처럼 포장하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거짓말은 해서도 안 될 것이고, 거기에 속아 넘어가도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경제활동과 이에 수반되는 금융활동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이 그 규모가 커졌고, 복잡성이 증대되었다.
또한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국의 경제주체들의 활동이 실시간으로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그 공급량이 자연의 힘에 의해 불규칙하게 결정되고, 또 남아공이나 러시아처럼 특정 국가에 치우쳐서 생산되는 금속으로 세계의 금융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오늘날 금본위제를 다시 채택한다면 매우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것이다.
금에 대한 집착이 가장 잘못된 부분은 근본적으로 물질에서 ‘영원’을 얻고자 하는 태도에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진리 이외의 것에서 영원을 얻고자 하는 태도는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모든 물질의 가치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세일러지음, 착각의 경제학, p491~493,㈜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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