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경제

금을 화폐로 채택하여 사용 한 이유

휴먼스테인 2020. 4. 5. 16:28

지난 역사의 어느 시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을 화폐로 채택하여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때 금을 화폐로 채택해서 사용했던 이유는 금이 고유한 내재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금이 도처에서 그토록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말과, 원래는 금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에 의해 가치를 지니게 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오히려 금보다 가치가 낮은 존재로 인식된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라워했다.

-토머스모어(1478-1535), 보석과 부의 유토피아14

 

성왕께서 아무 쓸모가 없는 물화로써 유용한 재화와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은,

훼손되는 낭비도 없애고 또 운반하기 어려운 수고로움도 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錢이 귀패의 공을 이어서 역대로 폐지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곡식과 포목의 보배됨은 원래 입고 먹는 데 쓰이는 것인데,

그것을 나누어 화폐로 삼으면, 상하게 되는 것이 매우 많이 생기고,

또 사고파는 과정에서 훼손이 되며, 끊고 절단하여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지러지고 버리게 되므로, 이의 폐단됨은 옛보다 더 두드러질 것입니다.

-대각국사(大覺國師)문집 제1215

 

칼리프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634-644)가 낙타의 가죽으로 돈을 만들자고 했지만, 사람들은 만약 그렇게 되면 낙타의 씨가 마를 것이라고 반대했다.

-역사가 발라두리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서양 모두 일찍부터 유용한 물건으로 돈을 삼으면 곤란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서 알고 있었다.

쌀이 돈으로 사용되면 그 쌀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먹어버리면 돈이 다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흉년이 들면 그 공동체에 존재하는 여분의 쌀을 내어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하는 일이 시급한데도 부자들은 쌀을 내놓기를 거부한다. 모두 먹어버리면 돈이 다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낙타의 가죽을 돈으로 사용하기로 제도를 정하면, 모두가 낙타를 죽여서 돈을 만들 테니 결국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동서양 모두 처음에는 유용한 물건인 쌀이나 직물을 물품화폐로 사용하다 점점 금속화폐로 옮아갔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쓸모가 없는 금속인 금을 화폐로 삼았던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입으로 깨무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금이 너무 물러서 이빨로 깨물 수 있는 금속이기 때문이다. 금은 이처럼 너무 무른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그릇이나 농기구, 칼 같은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없는 쓸모없는 금속인것이다. 반짝이는 성질을 활용해서 장신구를 만들긴 하지만, 장신구는 실용성을 갖춘 물건이 아니니 폐단이 가장 적다.    

이처럼 금은 유용성이 전혀 없는 금속이었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화폐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금이… 인간에 의해 가치를 지니게되었다는 토머스 모어의 지적은 추상적인 비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세일러지음,착각의 경제학, p355~357,㈜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