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신약성서 사본 가운데 가장 온전하면서도 오래된 헬라어 사본(best manuscripts)으로 서기 4세기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B)을 꼽는다. 이들 필사본에 따르면 마가복음은 16장 8절로 끝난다.(Bruce M. Metzger, A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 122-26). 여기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부활이야기(resurrection account)가 들어 있지 않다. 한글 성경과 다른 번역본에 포함된 마가복음 끝부분(막 16:9-20)은 나중에 첨가된 여러 부활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긴 본문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성서학자들이 이 첨가물(?)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부분에 대한 주석을 회피하는 편이다(Boring, France, Myers). 반면 기존 교회들은 본래 마가복음에 부활이야기가 없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에 영 심기가 불편하다. 이 둘을 아우르는 어떤 묘책이 없을까?
마가복음의 부활이야기
사도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밝히고 있다(고린도전서 15장). 아마도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이야기는 마가복음 이전에 이미 초대교회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예수의 부활이나 죽음 이후의 여정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제자들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갈릴리로 가라!’ 예수가 처형당한 금요일부터 일요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막 16:1-8에 몇 가지 눈에 띄는 사항이 있다. 우선 여인들이 무덤에 와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본다. 누가 이 돌을 옮겼을까? 본문에는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또 한 청년이 무덤 안에 있었는데 그는 여인들에게 예수의 말을 상기시키며 이를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갈릴리로 갈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여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막 16장 9절에는 또 다른 안식일 이후의 부활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6:11, 13, 14).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하지 않은 여인들의 이야기(16:1-8)와 그 전해진 소식을 믿지 않은 제자들 이야기(16:9-20)는 아무리 봐도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두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서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진 해석학적 문제이자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과제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사실은 여인들이 마가복음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는 점이다. 즉 예수가 처음 병을 고친 대상이 시몬의 장모였고 그 여인은 예수를 섬긴다(1:30-31). 마지막에도 모든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상태에서 몇몇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의 죽음을 지킨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날 예수의 무덤에 다시 나타난다(15:47; 16:1). 국가전복의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 처형을 당한 사람의 무덤에 나타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제자들조차 예루살렘 당국의 핍박이 두려워 문밖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인들은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무덤에 온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은 자의 몸에 향료를 바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갑작스런 죽음을 당한 고인에게 마지막 예(禮)를 갖추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인들은 죽은 예수를 향해 가졌던 마지막 선의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오히려 새로운 임무를 전달받는다. 너희가 예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데 필요한 향료는 이미 이름 없는 한 여인에 의해 드려졌다(14:3-9). 이제 남은 할 일이란 고인의 뜻을 받드는 일인데, 그것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여인들과 제자들이 당시에는 그 뜻을 깨닫지 못했다. 여인들은 무서워서 도망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16:8). 마가복음은 이렇게 침묵으로 끝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귓가에 맴도는 여운이 있다. 너는 어떻게 하려느냐? 너희도 두려우냐? 결국 마가복음은 오늘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향한 메시지가 된다.
「박원일지음,마가복음정치적으로읽기,p289~291,한국기독교연구소」
'인문학 >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는 청년 (0) | 2020.04.08 |
---|---|
기도를 한다는 것 (0) | 2020.03.30 |
메시아 비밀 (0) | 2020.03.27 |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0) | 2020.03.24 |
새로운 가르침이다 (0) | 2020.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