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종교

무슨 권위를 내세워 예수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일까?

휴먼스테인 2018. 11. 22. 16:33

무슨 권위를 내세워 예수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일명 필론의 작품(≪성경 고대사≫ 16,1)에서 모세가 명한 것으로 되어 있는 옷의 술을 거부하는 코레의 시너고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구절에서 좀 더 읽어 내려가면, 벤야민 사람들이라는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이 범했다는 죄를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우리는 율법의 책을 뒤져서 그 내용을 참으로 하느님이 기록하였는지, 아니면 그 가르침을 모세가 자기 자의로 부과했는지 알아보려 했습니다.”(≪성경 고대사≫ 25,13)

그러니까 율법의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권위를 문제시했다는 뜻이다.

실상 이들은 율법에서 하느님의 작품 또는 계명과 모세의 그것과를 구별하고 식별하려는, 이를테면 일종의 성경 비판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던 것이다.

어떤 유다인들은 열 말씀을 너무 지나치게 치켜올리는 바람에 율법의 다른 법 규정들을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격하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법 규정들은 하느님에게서 직접 온 것이 아니고 모세나 그 밖의 다른 어떤 천사들의 중개를 통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갈라 3,19; 사도 7,38.53; 히브 2,2 참조).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였다. 그래서 기원 후 1세기 말 또는 2세기 초의 유다교 당국에서는 유다교 회당의 기도 의식에서 십계명의 독송讀誦을 완전히 폐지시켜 버렸다.

율법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인 태도에 침례주의자들이 결코 무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도 이 침례주의자 중의 하나였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이 예수에게서 비슷한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이혼에 관한 마르코 복음서 101~12절의 대목에서 예수는 모세의 말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권위에 직접 호소하는 것을 읽어 볼 수 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마르 10,5)

이어서 예수는 이혼을 반대하는 논거를 들어서 이 문제에 관한 하느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려는 시도를 벌인다.

창조주 하느님의 진정한 뜻이라지만 과연 무슨 권위를 내세워 예수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일까?

율법의 이런저런 부분을 상대적으로 더 중요시하느냐 또는 거부하느냐 하는 평가를 넘어서서 그 권위에 관한 이 질문이야말로 당시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였다.

과연 누구의 권위로 또는 무슨 명목으로 하느님의 계시 가운데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없고의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가령 요한 복음사가에 따르면, 예수는 여러분들의율법이니 그들의율법이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율법에 대해 상당히 거리를 떼어 놓고 유다인들에게 말을 건네곤 하는데, 예수의 이 무엄한 태도를 과연 어떻게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요한 8,17; 10,34; 15,25) 사실, 당시는 권위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제기된 시기이기도 했다.

 

「샤를르 페로지음ㅣ박상래옮김,예수와 역사,p238~240,가톨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