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종교

선과 악의 싸움

휴먼스테인 2017. 5. 20. 15:33

선과 악의 싸움

 

다신교는 일신교만 낳은 것이 아니라 이신교도 낳았다.

이신교는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의 존재를, 즉 선과 악을 믿는다.

일신교와 달리 이신교에서 악은 독립적인 힘이다.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그 신에 종속된 것도 아니다.

이신교는 온 세상을 이들 두 힘의 전쟁터로 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싸움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신교는 이른바 악의 문제에 간명한 해답을 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이 유명한 문제는 인간의 사상에서 가장 근본적 관심사 중 하나다.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할까? 왜 고통이 존재할까?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일신론자들은 이런 물음에 대답하려면 지적인 곡예를 부려야만 했다.

전지전능하며 완벽하게 선한 하느님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알려진 하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라고 했다.

악이 없다면 인간은 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유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답으로서, 즉각 수많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악을 선택하도록 허락한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악을 택하며, 일신교의 정통적 설명에 따르면 이런 선택은 반드시 신의 벌을 부른다.

그러나 만일 그 인물이 자유의지로써 악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신이 미리 알았다면, 신은 왜 그를 창조했을까?

신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이런 답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일신론자들이 악의 문제에 쩔쩔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신론자들에게는 악을 설명하기가 쉽다.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 신에 의해서만 통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독립된 악의 힘이 돌아다니고, 악의 힘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

이신론자의 견해에는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만일 세상을 유일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질서가 잘 잡히고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현실이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움을 관장하는 법칙을 정한 존재는 누구인가?

두 나라가 싸울 수 있는 것은 둘 다 똑 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인도의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는 것은 양국에서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일 선과 악이 싸운다면, 이들이 따르는 공통의 법칙은 무엇이며 그 법칙은 누가 정했는가?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유발 하라리 지음, 사피엔스, p313~314,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