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종교

일신교에서 살아남은 다신교

휴먼스테인 2017. 5. 17. 15:27

일신교에서 살아남은 다신교

 

 

하지만 다신교 내에서 애니미즘이 계속 살아남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신교 내에서 다신교 역시 살아남았다.

이론상으로는 우주의 최고 권력이 사심과 편견을 지닌다고 일단 믿는다면, 부분적 권력을 숭배해봐야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문이 열려 있는데 하위관료를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사실 일신론 신학은 최고신 이외의 모든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감히 그런 잡신들을 믿는 자에게는 지옥불과 유황을 퍼붓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신학 이론과 역사적 실재 사이에는 늘 틈이 있기 마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신교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들은 계속해서 세상을우리그들로 나누었고, 우주의 최고 권력이 자신들의 세속적 욕구에 비해 너무 멀고 낯설다는 시각을 견지했다.

일신교들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면서 대문으로 잡신들을 내쫓고서는 창문을 통해 이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성자들로 구성된 나름의 만신전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은 다신교의 만신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유피테르 신이 로마를 수호하고 우이칠로포치틀리 신이 아즈텍 제국을 지켰듯이, 모든 기독교 왕국에는 수호성인 있어서 고난을 극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었다.

영국은 성 조지의 수호를, 스코틀랜드는 성 안드레의 비호를 받았다.

헝가리 성 이슈트반, 프랑스는 성 마르탱이 수호했다.

도시와 읍, 전문직, 심지어 질병에도 자신만의 성인이 있었다.

밀라노는 성 앙브루아즈의, 베네치아는 성 마가의 보살핌을 받았다.

성 엘모는 굴뚝 청소부들을 보호했고, 성 마태오는 괴로워하는 세금 징수관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두통이 있다면 성 아가티우스에게 기도해야 하지만, 치통을 앓는다면 성 아폴로니아가 훨씬 더 잘 맞는 기도 대상이었다.

기독교 성인들은 옛 다신교의 신과 단순히 닮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바로 그 신들이 변장한 경우도 흔했다.

가령 기독교 전래 이전 켈트 섬의 최고 여신은 브리지드였다.

이 섬이 기독교화하자 브리지드도 세례를 받았다.

이제 성 브리지드가 된 그녀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큰 추앙을 받는 성인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 지음, 사피엔스, p311~312,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