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종교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 시키는 매개체

휴먼스테인 2017. 5. 1. 13:34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 시키는 매개체

 

 

중세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에 세워진 도시 사마르칸트의 시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리아 상인들은 섬세한 중국 비단 위에 손을 올리고, 대초원 지대의 난폭한 부족민들은 먼 서쪽에서 최근 잡아온 밀짚 빛 머리칼을 지닌 노예 무리를 전시했으며, 소매상인들은 생소한 왕의 옆얼굴과 문구가 새겨진 반짝이는 금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중세 동양과 서양, 남쪽과 북쪽의 주요 교차로인 이곳에서 인류의 통일은 일상적이었다.

1281년 쿠빌라이 칸이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서 군대를 소집했을 때도 똑 같은 과정이 작동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모피를 두른 몽골 기병은 대나무 삿갓을 쓴 중국 보병들과 같이 어울렸으며, 술 취한 고려인 외인부대원들은 문신을 한 남중국해 출신 선원들과 싸움을 벌였고, 중앙아시아의 엔지니어들은 유럽 모험가들이 늘어놓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입을 딱 벌렸고, 이들 모두가 한 명의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한편 메카의 신성한 카바 신전 주변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통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만일 당신이 메카의 순례자로서 기원후 1300년에 이슬람 최대의 성지 주변을 돌고 있었다면,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사람들과 한 무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옷은 바람에 펄럭이고, 눈은 황홀경에 불타는 듯하고, 입으로는 99명의 신의 이름을 하나하나 되풀이해 읊조린다.

당신 바로 앞에는 중앙 아시아 초원에서 온 터키인 족장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있다.

햇빛으로 거칠어진 피부의 그는 절룩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있다.

왼편에 있는 칠흑 같은 피부에 금 장신구를 번쩍이는 무리는 말리의 아프리카 제국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정향, 심황, 소두구 같은 향료와 바다 소금의 내음은 인도에서 온 형제들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 더욱 동쪽의 신비한 향신료 제도(몰루카 제도옮긴이)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 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준이 있다.

1. 종교는 인간의 변덕이나 계약의 산물이 아닌 초인적 질서가 있다고 여긴다.

프로 축구는 종교가 아니다.

수많은 규칙과 의식과 이따금 기묘한 의례가 있지만, 모두가 잘 알듯이 축구는 인간이 발명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은 언제라도 골문의 크기를 늘리거나 오프사이드 규칙을 폐기할 수 있다.

2. 이런 초인적 질서를 기반으로, 종교는 스스로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는 규범과 가치를 설정한다.

오늘날 많은 서구인이 유령이나 요정, 환생을 믿지만, 이런 믿음이 도덕과 행동의 기준의 원천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할 능력이 있지만, 모든 종교가 그 잠재력을 작동시킨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인간 집단들이 사는 광대한 영역을 자신의 가호 아래 묶어두려면, 종교에는 두 가지 추가적인 속성이 필요하다.

첫째, 언제 어디서나 진리인 보편적이고 초인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한다.

둘째, 이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달리 말해,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이슬람교나 불교처럼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종교는 보편적이고 선교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상 대부분의 고대 종교는 지역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신자들은 국지적 신과 영혼을 믿었으며, 인류 전체를 개종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한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종교는 기원전 1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고, 보편적 제국과 보편적 화폐의 등장과 매우 비슷하게 인류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유발 하라리지음, 사피엔스, p297~300,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