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 전에 읽어두면 도움되는 글, No spoiler]
영화계의 거장 형제 리들리 스콧과 그 동생 토니 스콧이 있다
토니 스콧이 찍은 영화중 가장 인상깊은 영화는 탑건이었다.
그 OST 역시 멋졌다
대우자동차에서 90년 초 ‘에스페로’의 광고에 쓰인 ‘take my breath away’는 내 마음을 흔들어서 기어코 ‘에스페로’를 구입하게 만들어었다.
이 토니 스콧 감독이 뇌종양이 밝혀지면서 미국 로스엔젤레스 빈센트 토마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나이 68세에 돌아가셨다니 많은 나이가 아닐 수도 있고 적지 않은 나이라고도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은 평생을 영화에 몰두하며 항상 연구하고 고민하고 또 죽기 직전까지 미드(굿와이프)를 찍고 있었다.
즉 쉬지않고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뇌종양에 걸렸다.
보통 머리를 쓰는 사람들은 가장 무서워 하는 병 또는 자기에게 닥치는 일중에 무엇을 제일 무서워 할까 하면
머리를 다치거나 머리를 못 쓰거나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등 머리쪽으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다
토니 스콧 감독은 이 뇌종양으로 인해 자기 두뇌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팔이나 다리 하나 잘리는 걸 더 원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날 나의 두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Still Alice’는 그런 영화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언어학교수로 아주 유명한 여교수가 주인공이다
하필 직업도 언어학이다. 그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언어를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면….
중간에 (39분경) 자살을 암시하는 대목과
1시 10분경 어느 강연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짠하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명장면이다.
‘줄리안 무어’ 라는 여주인공의 연기도 참 좋았고 나머지 조연들의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참 좋은 영화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이다.
또한 영화 제목 역시 It’s awesome!!
참고로 이 영화를 감독한 ‘리처드 글랫저’는 루게릭병 투병을 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고 2015년 3월 10일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
[스틸 앨리스]
손가락 하나로 완성한 ‘감독의 마지막 영화’
김세윤(방송작가) 시사인 397호 2015.04.24
영화감독 리처드 글래처가 소설 <스틸 앨리스>(한국 출간 제목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를 처음 읽은 건 2011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해 초, 부쩍 어눌해진 말투 때문에 병원을 찾은 그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일명 ‘루게릭병’이 발병한 걸 알았다. 병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걷고, 먹고, 말하고, 표현하는 모든 행동이 점점 힘겨워졌다. 그래서 <스틸 앨리스>의 책장을 넘기는 동작이 수월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이걸 영화로 만들겠다고 마음먹는 건 수월했다. 자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는 것과 근력을 잃는 것. 전혀 다르지만 완전히 같았다. 더 이상 여전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여전히(still)’ 예전의 자신으로 기억되고픈 주인공의 간절함이 자신의 마음과 똑같았던 것이다.
성공한 교수, 사랑받는 아내,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다 나이 쉰에 알츠하이머병을 만난 여자 앨리스(줄리앤 무어). “무슨 일이 있든 내가 곁에 있을 거야.” 굳게 약속한 남편은 차례로 닥쳐오는 ‘무슨 일’들 앞에서 아내보다 먼저 그 약속을 잊는다. “엄마가 무엇을 기억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어떻게 기억되느냐도 중요하다”라며, 엄마가 더 많은 실수를 하기 전에 요양원에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식들은 고민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주변 사람의 고통을 묘사하는 건 거기까지. 이 영화의 가장 근사한 미덕은 끝까지 환자 본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지켜보는’ 슬픔이 아니라 알츠하이머 환자로 ‘살아내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화의 잊지 못할 한 장면에서 앨리스가 말한다. “I am not suffering. I am struggling.” 자신을 그저 ‘애달픈’ 존재로만 보지 말고 ‘애쓰는’ 존재로 보아달라는 부탁. 같은 영화를 두 번 보았는데도 나는 매번 이 대목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일전에 <시사IN>과 한 인터뷰(제383호 ‘시인, 시를 말하다 느릿느릿 애쓰며’ 기사 참조)에서 시인 김사인이 말했다. 시라는 건 “누군가 몹시 사무쳐서 해놓은 거”라고. “심혈을 기울여 애써서 뭔가를 한 거”에는 “무언가 있을 법한 거”라고. 그 곁에 “같이 머물러 있어주”는 사람에겐 그 누군가의 “어떤 애씀이 스며”들게 될 터이니, 그렇게 되면 “그냥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많은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라고. 영화도 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 하나로 완성한 감독의 마지막 영화
리처드 글래처 감독은 “스스로 먹거나 옷을 입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되었을 때 촬영을 시작했다. “겨우 손가락 하나로 타이핑할 수 있을 정도”여서, 글을 말로 바꿔주는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으로 현장을 지휘했다. 그에게 이 영화를 완성한다는 건, 연출이라기보다 차라리 사투에 가까웠으니. 그렇게 ‘이 세상의 일부로 남아 있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감독의 ‘어떤 애씀’이, 영화 보는 내내 당신 마음에 스며들 것이다. ‘그냥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많은 좋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 같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상실의 기술”을 배우는 일 같은.
예전의 자신에서 멀어지던 어느 영화감독이 ‘몹시 사무쳐서’ 만든 영화. 그 사정을 잘 아는 배우 줄리앤 무어가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 연기한 작품. 그녀는 <스틸 앨리스>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감독의 생을 응원했지만, 지난 3월 감독은 끝내 고인이 되었다.
봄이다. 하지만 아직 나비를 보지 못했다. 다행히 이 영화를 보아서 내 마음속에선 지금 예쁜 나비가 날아다닌다. <스틸 앨리스>를 보고 나서야 나의 계절은 비로소 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