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업 계획
세계은행 역사상 총재직을 가장 오랫동안(1949~1963년) 수행했던 유진 블랙(Eugene Black)이
개발도상국들은 고속도로, 일관제철소, 국가 원수의 기념비라는 세 가지 상징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난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개발도상국가 원수들이 그렇게까지 자기 우상화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발언에서 국가 원수 기념비 부분은 좀 부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실현 가능성은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유행처럼 고속도로나 제철소같이
눈에 띄는 프로젝트에만 손을 대는 분위기를 우려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 너무도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고속도로와 제철소를 건설했지만,
고속도로는 내내 텅 비어 있었고 제철소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관세 보호 정책으로 간신히 유지되었다.
흔히 ‘흰코끼리 프로젝트’ 니 ‘사막의 성’ 이니 하는 표현도 당시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말이었다.
그때 개발도상국들이 꿈꾸던 ‘사막의 성’ 들 중에서도 제일 황당무계한 것이 1965년 한국이 내놓은 일관제철소 건설 계획이었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어류, 텅스텐 같은 천연자원이나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
저가 의류 같은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 제품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다.
국제 무역의 정설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비교 우위론을 따르자면
한국처럼 노동력이 풍부하고 자본이 부족한 나라는 철강 같은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은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철강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마저 나지 않는 나라였다.
철광석이 풍부한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자연스럽게 철강산업이 발전했지만,
한국은 현대적 철강 제조업의 가장 핵심 원자재인 철광석과 점결탄이 거의 하나도 나지 않았다.
요즘 같았으면 원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했겠지만 그때만 해도 냉전 시대라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무역 거래가 없었다.
따라서 원자재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들여와야 했고,
모두 5000~6000마일 떨어진 곳들이니 운송비가 엄청났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한국 정부가 항만, 도로, 철도 등의 인프라 무료 이용, 세금 감면, 투자 초기 세금 부담 완화를 위한
자본 설비 가속 감가상각 적용, 전기, 수도요금 인하 등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약속해도 외국 원조나 투자자를 찾기가 힘들었다.
자본을 대 줄 파트너를 찾기 위해 세계은행,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정부 등과 협상을 하는 사이
한국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미심쩍어 보이는 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더 떨어뜨릴 만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제철소를 운영할 회사인 포스코를 1968년에 창립한 한국 정부는 이 회사를 국영 기업으로 만들었다.
당시는 개발도상국의 국영 기업들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한 우려가 널리 퍼져있을 때였다.
게다가 포스코를 이끌게 된 인물은 군 장성 출신으로 몇 년 동안 국영 텅스텐 광산 업체를 운영한 것 말고는
별다를 기업 경험이 없는 박태준 회장이었다.
아무리 군사 독재 정권이라도 이건 정말 너무 지나친 처사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큰 벤처 기업을 설립하려는 마당에 그 일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사람이 전문 경영인도 아니라니 말이 되는가!
자본 공여 기관들에게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업 계획이나 다름없었다.
국영 기업에, 정치적으로 기용된 군 출신 사장, 생산하겠다는 것도 어느 경제학 이론을 찾아봐도
그 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들을 만한 제품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세계은행은 다른 자본 공여 기관들에게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지 말 것을 권고했고
협상을 하던 모든 파트너들이 1969년 4월 공식적으로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설득해
그들이 지불하고 있던 식민 통치(1910~1945)에 대한 보상금 중 상당 부분을 제철소 건설 쪽으로 전용해 줄 것과
제철소에 필요한 기계류와 기술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포스코는 1973년 철강 생산을 시작했고, 세계 시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빨리 자리를 잡았다.
1980년 중반에 이미 세계 보통강 생산업체 중 가장 비용 효율이 높은 기업으로 꼽혔고,
1990년대에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철강 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포스코는 2001년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민영화되었고, 현재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4위 규모를 자랑한다.
참으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업 계획에서 어떻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수수께끼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 주도로 생겨 성공을 거둔 한국 기업은 포스코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한국 정부는 많은 민간 기업들을 ‘독려’해
기업 스스로 선택하도록 놔두었으면 손댈 가능성이 별로 없음 직한 부문에 진출하도록 만들었다.
이 ‘독려’는 종종 정부 보조금이나 수입품으로부터의 보호 관세 같은 당근의 형태를 띠었다.
(실적이 시원찮은 기업들에게는 이런 지원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당근인 동시에 채찍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당근을 주어도 기업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으면 채찍, 그것도 큰 채찍이 동원되었다.
당시 전적으로 국가 소유였던 은행들을 통한 대출 중지 위협이나 중앙정보부에서 ‘조용히’ 타이르는 방법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정부 주도로 시작된 기업들 중 많은 수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자업계의 거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LG는 1960년대에 섬유 산업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정부로부터 이를 저지당하고 대신 전선 산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전선회사가 바로 LG그룹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LG전자의 전신이다.
(최신 초콜릿폰에 눈독을 들여 본 사람이라면 LG전자라는 이름에 익숙할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 정부는 현대그룹의 전설적인 창업주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업을 시작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한 정주영 회장마저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당시 독재자이자 한국의 경제 기적을 주도한 박정희 장군이 직접 현대그룹을 파산시키겠다고 협박하자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게 시작된 현대조선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 회사 중의 하나이다.
● 원문에서는 winner(승자)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승자 또는 유망주는 특정 산업 부문에서 성공할 가능성 있는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 밑거름이 될 산업 부문,
심지어 특정 제품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승자를 선택한다는 의미의 ‘picking winners’는 경마에서 유래한 말로,
경마에서 우승할 말을 미리 골라 돈을 걸듯이 산업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등 후보(유망주)를 선정해 지원을 한다는 의미이다.
●● white elephant project.
불교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흰 코끼리는 동남아시아에서 왕권의 정당성과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을 시킬 수 없는 짐승이다.
보기에는 번드레하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데다 실질적인 이용 가치는 전혀 없는 물건을 가리킨다.
『장하준 지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김희정,안세민 옮김, p171~175,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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