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 몫으로 차지한
우리 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 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한 방 먹이면
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
꽃이 되지 않으리.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
나를 어지럽히던 그 거칠던 숨소리
으쓱거리며 휘파람을 불어 주던 그 헌신을
어찌 오빠라 불러 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로 불리워지고 싶어 안달이던
그 마음을
어찌 나물 캐듯 캐내어 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
이렇게 불러 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이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 버렸다.
<출처: 사랑의 기쁨-문정희 시선집, 문정희 지음,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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