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詩

오빠

휴먼스테인 2014. 1. 17. 07:54

 

오빠 /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 몫으로 차지한

우리 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 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한 방 먹이면

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

꽃이 되지 않으리.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

 

나를 어지럽히던 그 거칠던 숨소리

으쓱거리며 휘파람을 불어 주던 그 헌신을

어찌 오빠라 불러 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로 불리워지고 싶어 안달이던

그 마음을

어찌 나물 캐듯 캐내어 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

이렇게 불러 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이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 버렸다.

 

<출처: 사랑의 기쁨-문정희 시선집, 문정희 지음,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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