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경영

준법투쟁

휴먼스테인 2014. 1. 15. 10:54

인간 행동 동기의 복잡성을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좋은 예는 규칙대로 일하기 라는 합법적 파업 수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데 적용되는 규칙들을 모두 철저히 준수해서 작업에 드는 시간을 늘리는 투쟁 방법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어떻게 노동자들이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고용주에게 피해가 되는지 의아할 터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식 파업, 혹은 백색 스트라이크(이탈리아 말로는 쇼페로 비앙코 Sciopero Bianco)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방법은 생산량을 30~50퍼센트까지 떨어뜨린다.

이 현상은 고용 계약서, 즉 규칙에 고용인의 임무를 모두 명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용인이 계약서에 쓰여 있지 않은 가외의 일도 해내고, 임무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주체적 결정도 내리고,

규칙이 너무 복잡할 경우 지름길도 알아서 택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회사를 경영하는 탓에 벌어지는 일이다.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용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고용인들이 평상시에 이렇게 이기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 동기는

일에 대한 애정, 자기 기술에 대한 자부심, 자존심, 동료들과의 결속력, 경영진에 대한 신뢰, 애사심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자유 시장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완전히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면 기업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work to rule. 한국에서는 준법 투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단체 행동이 금지된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이 기다리는데도 점심시간을 엄수한다든지,

택시 기사들이 모두 규정 속도를 절대 넘지 않고 운행을 한다든지, 생산 라인 노동자들이 모두 동시에 휴가를 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이다.

 

『장하준 지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김희정,안세민 옮김, p75~76,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