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심리

우선순위의 문제

휴먼스테인 2022. 10. 12. 13:22

몇 주 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음악을 온 사방에 쩌렁쩌렁 울리게 틀어놓고 주유소로 운전해 들어왔지요. 그는 보라색으로 칠해진 픽업트럭을 타고 있었습니다. 차 외관은 아주 낮게 개조해서 과속 방지턱에 걸릴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고, 유리창은 짙게 선팅되어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자동차 바퀴는 크롬으로 도금했고 차체 밑에는 네온사인을 달아서 마치 우주선이 내는 빛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차를 개조하느라 그의 몇 달 월급은 고스란히 들어갔을 겁니다.

심리학자로서 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차를 몰고 다니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물어봤죠. ‘이런 식의 차를 타고 다님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차를 운전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또 그 메시지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까?’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은, 저도 모르게 그 차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주유소에는 얼추 열 대에 가까운 차들이 있었을 텐데, 그 차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주선 같은 네온사인, 눈에 확 띄는 보라색, 시끄러운 음악 같은 것들이 저의 시선을 그 차로 향하게 했던 겁니다. 그래서 아마 남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그 트럭의 목표 중 하나일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남의 시선을 끄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왜 하필 이 방법을 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죠. 트럭 가득히 인형을 싣고 다녔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 운전자는 굳이 자기 돈을 들여서 보라색 페인트를 칠하고, 비싼 크롬휠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전자가 내보이고 싶어 했던 두 번째 메시지는 자신의 부에 대한 자랑이 아닐까 분석해보았습니다.

일반적인 트럭을 가져다가 돈을 들여 특이하게 개조했다는 것은, 남들이 다 쓰는 페인트, 남들이 다 쓰는 타이어는 그 운전자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걸 뜻합니다. 그는 특별한 무언가를, 남들과는 구별되는 무언가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특이한 트럭인 내보이는 세 번째 메시지는 자신은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메시지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건지 생각했습니다. 이 운전자는 도대체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요? 확실히 저는 아니었겠지요. 그렇다면 어리고 미성숙한, 그리고 아마도 불장난 같은 만남에 관심 있을 여자가 그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대체로 어떤 한 사람과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연인관계를 갖는 남자는 네온사인을 차에 붙이고 다니지 않으니까요.

여기까지 생각하니 그 트럭 주인은 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트럭을 운전하고 다님으로써 이 남자는이봐, 아가씨들, 나를 한번 봐봐. 나는 돈 많고 잘나가는 흔치 않은 남자야'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이게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는 아닐 테지만, 저는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처럼 그 역시 숫자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길 하나에 여자가 열명 정도 있다고 생각하고 수백 개의 길을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수천 명의 여자 중 몇 명은 넘어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네온사인이 달린 트럭이 나르시시즘의 가장 좋은 예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런 식의 물질만능주의가 여러형태로 나르시시스트들에게서 관찰된다는 겁니다. 가령 이탈리아 양복, 스위스 시계, 독일 승용차 등의 형태로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왜 이렇게 값비싼 물건들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겨 자신이 잘나가고 돈 많고 특별한 사람임을 알려주고 싶은게 목적이라면, 그것이 바로 나르시시스트 특유의 물질만능주의입니다.

 

「키스 캠벨 지음ㆍ박선웅옮김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가P. 135 - 137도서출판 갈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