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병조림업자들 간의 결속이 강화되어 감에 따라, 코카 콜라 특유의 병을 디자인하기로 한 레이워터와 허쉬의 계획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소매점에서는 병에 든 청량 음료를 얼음물을 가득 채운 커다란 통에다 넣어 놓고 팔았다. 코카 콜라의 병조림업자들은 다른 음료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 평범한 병(표면이 밋밋한)을 사용했다. 그런데 목마른 소비자들은 소매를 걷어올리고 침침한 통 속에 손을 넣어 병을 꺼내야 했기 때문에 자기가 손에 잡은 음료수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병을 통 밖으로 꺼낸 상태에서도 혼동은 계속되었다. 걸핏하면 상표가 물에 젖어 벗겨져서 통 밑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코카 콜라를 특이한 모양의 병에 담는다면 마케팅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또한 포장 용기 자체가 상표와 같은 역할을 할 테니, 허쉬로서는 법정 싸움에 이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를 얻게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새 병이 보통 병보다 작을 경우, 그러니까 보통의 8온스짜지 병이 아니라 6온스나 6온스 반짜리 병일 경우, 이윤도 늘어나게 될 터였다. 허쉬의 권유로 레인워터는 모델 선택을 책임진 병조림업자 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들이 선택한 모델은 멋진 실수가 빚어 낸 작품이었다. 1913년 늦여름, 인디애나 주의 테르호트에서는 코카 콜라의 병 납품 회사 가운데 하나인 루트 유리 회사가 무더운 날씨 때문에 조업을 중단했다. 공장 감독인 앨릭스 새뮤얼슨은 비는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병에 대해 이리저리 머리를 짜다가 한 가지 영감을 얻게 되었다. 그는 부하 직원이 클라이드 에드워즈를 시립 도서관으로 보내 코카 나뭇잎과 콜라나무 열매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게 했다. 핌버튼 박사의 제조법에 들어 있는 원래 성분과 흡사한 모양으로 병을 만들면 독특하리라는 게 새뮤얼슨의 생각이었다. 사실 이것은 멋진 착상이었다. 그러나 자료를 따라 읽어 내려가다가 어느 부분에선가 새뮤얼슨과 에드워즈는 난관에 봉착했다. 새뮤얼슨의 영어 실력이 빈약해서(그는 스웨덴 태생이었다)였든가, 아니면 에드워즈의 잘못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두 사람은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의 엉뚱한 페이지를 펼쳐 들고 말았다. 그들은 세로 줄을 넣고 중간을 불룩하게 구부린 병을 디자인했는데, 이 병은 어느 모로 보나 코카 나뭇잎이나 콜라나무 열매와는 닮은 데가 없었다. 그 대신, 이 병은 그것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나무의 씨 꼬투리를 꼭 빼닮았다. 이렇게 해서 상품 역사상 가장 친숙한 모양중에 하나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 병이 실수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는 했어도, 레인워터는 새로운 디자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는 견본품을 만들어, 몇몇 코카 콜라 병조림 공장에 은밀하게 돌렸다.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그는 몇 가지 기술상의 수정을 가한 뒤, 병조림업자 위원회로 하여금 회사의 모든 병조림 공장에서 예외 없이 그 병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는 병의 색깔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갈색을 주장하는 헌터와 오랜 논쟁을 벌인 끝에, 그가 제시한 밝은 녹색이 갈색을 누른 것이다. 새로운 병은 금세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허쉬는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C.J. 루트에게 그의 회사와 다른 유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모든 병에 대해 1그로스(144개)당 25센트의 사용료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루트는 너그럽게도 1그로스당 5센트씩만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루트는 결국 인디애나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프레드릭 앨런지음,코카 콜라의 신화ㆍ1,p251~253,㈜열린세상」
'인문학 >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강徒杠과 여량輿梁의 경영 (0) | 2020.10.27 |
---|---|
코카콜라 제조법을 신성하고 숭배하게 만든 마케팅 기법 (0) | 2020.10.14 |
콜라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0) | 2020.09.26 |
코카콜라 초창기 코카인의 양 (0) | 2020.05.25 |
코크는 미국인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0) | 2020.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