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사회

한국의 한 교과서는 민족을 통해서 ‘삶의 의의’를 찾는 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휴먼스테인 2020. 6. 4. 01:17

한국의 한 교과서는 민족을 통해서 삶의 의의를 찾는 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비록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의 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나의 얼은 우리 민족의 얼 속에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며, 따라서 나는 민족의 존속과 더불어 영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학교용『도덕 1208)

 

북조선의 전체주의적 교과서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내용에서 한 개인이 민족이라는 집단에 매몰되는 파시즘적 메시지를 읽는다. ‘는 오로지 민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개체며 민족에 의해서 구원되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라는 인간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민족의 영속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여전히 민족/국가적 규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그러한 구속성에 대한 저항은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어느새 이기적이고 서구편향적인 것으로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민족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은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다. 어느 근대사회에서도 애국심민족적 전통,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 가치며 성역이다. 물론 리버럴 개인주의(liberal individualism)의 시대가 민족주의 시대와 교차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반드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진보적 민족주의자로 자리매김되는 장준하도 하나하나의 개인은 저마다 독자적 의미와 개성을 가진 유일무이한 인격적 생명으로서 천하 무엇으로써도 빼앗을 수 없는 존엄과 품위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요즘의 민족주의자들이 되새겨야 할 내용이다. 특히 서구에서 이러한 리버럴 프로젝트는 민족주의와 민족국가의 틀과 자장 내에서 대부분 실현되었다. 개인의 자유, 형식적 평등, 민주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후발국 혹은 후후발국에서 일어난 민족주의(특히 종족적 민족주의)는 되레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훼손하고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민주적 공간을 억압했다.

 

「권혁범지음,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p91~92, 생각의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