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과 ‘둘째부인’
그날 밤 나는 타스님과 벽난로 앞에 앉아 사나에게 들은 이야기에 대한 내 느낌을 나누었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가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사나 이야기를 들은 후 내 가슴도 많이 아프다고 했다.
타스님은 불을 바라보며 내게 말한다.
“글쎄……타라. 남자들이 자기 부인 외에 다른 여자를 탐내는 건 항상 있어왔던 일이에요.
지금도 유럽에서 미국에서 또 많은 나라에서 부인 있는 남자가 여성들에게 접근하고 또 여성들도 결혼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그들이 필요해서 취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부’라는 이름으로 또 ‘첩’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눈에 안 띄게 일생을 숨어 살며 아이들조차 사생아라고 남자의 호적에 정식으로 못 올리는 서구적 시스템이 낫겠어요? 아니면 둘째, 셋째 부인이라도 첫째 부인과 똑같이 법적인 권리를 가지는 정식 부인이 되고 아이들도 모두 정당한 법적 자식들이 되는 이슬람의 시스템이 낫겠어요?
타라가 만약 결혼한 남자와 부득이하게 사랑에 빠졌다면 어떤 시스템이 당신을 더욱 보호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을 높여줄까요? 모든 건 상대적인 거예요.”
나는 타스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깊은 밤, 타스님의 침실이 있는 건물에서 내가 묵고 있는 소나무 숲 속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는 나를 낳아주신 생모를 떠올렸다.
나의 아버지는 50대 중반까지 부인에게 아이가 안 생기자 아이 낳아줄 여성을 찾다가 나의 생모를 만났다고 한다.
‘대리모’를 찾다가 만난 관계였지만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결국엔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고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이 관계를 드러내고 살 수 없었다.
결국 나의 돌날, 나를 그의 법적 부인에게 데려왔고 나는 그분을 내 어머니라 여기고 30살이 넘도록 생모의 존재도 모른 채 살았다.
90이 넘은 나의 생모는 요사이도 내게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너의 아버지는 정말 멋있는 남자였어. 여자 마음을 잘 이해하고 여자를 어떻게 사랑해줘야 하나 잘 아시는 분이었지. 정직하고 뜨겁고 의리 있고……. 요사이 자꾸 그분 생각이 나. 그분이 그렇게 외롭게 혼자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걸 알았더라면 돌아가시는 날까지 옆에서 돌봐드리며 병수발을 했을 거야.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려.”
생모의 말에 의하면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또 내 곁에 생모를 얼씬도 못 하게 막으셨다 한다.
남편을 나눠 갖기가 고상하고 교육받은 그 어머니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 앞의 큰 소나무를 껴안고 그분들 생각을 했다.
문득 우리 가족에게는 이슬람 시스템이 훨씬 인간적이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피해를 받는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삶이 가져다주는 모순과 짐을 조금은 더 공평히 나눠 졌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모 혼자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아버지도 그렇게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 못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암으로 아버지보다 빨리 저세상으로 가셨다.
한 생애 동안 경험하는 남녀의 사랑을 넉넉히 품어주기엔 어떤 결혼제도도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
인생은 너무 짧고 사랑은 너무 안타깝다.
「현경지음,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p222~224, (주)웅진씽크빅」
'인문학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유치원 (0) | 2019.05.16 |
---|---|
인도네시아 여성 이주 노동자 (0) | 2019.05.16 |
나왈의 삶 (0) | 2019.01.16 |
집시 결혼식 (0) | 2018.12.16 |
Boston Legas Season 4 E.16 중에서 (0) | 2018.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