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하고 암컷이 짝짓기를 하고 있으면 당장에 “아 저 수컷이 자기 배우자가 있는데 다른 암컷하고 섹스를 하는구나!”라고 여기며 시작한 겁니다. 아, 저 수컷이 두 번째 암컷을, 조금 있다 보니까 또 다른 암컷하고 짝짓기를 하고 있어요. 아, 세 번째 암컷이군. 그러는 동안에 아무도 보지 않는 게 있어요. 그 수컷이 다른 암컷이랑 짝짓기를 하고 있으면 그 대상인 다른 암컷도 지금 분명히 다른 수컷하고 짝짓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암컷의 세계에 많은 수컷을 상대해도 별 상관없는, 이른바 ‘정비석의 자유 암컷’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숫자가 맞질 않아요. 수컷이 많은 암컷을 상대하면, 암컷 중에서도 분명히 많은 수컷을 상대하는 암컷들이 어느 정도 있어야 짝이 맞는 거죠. 아니면 많은 수컷은 죄다 다른 수컷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거나. 우리가 남자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할 때, 집창촌을 찾거나 다른 남성을 찾는 걸 통계에 넣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남자만 바람을 피우고 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수컷이 많은 배우자를 상대하는 성향을 자세히 관찰해서 쓴 논문들은 많은데, 암컷의 입장에서 관찰한 논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이런 관점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저도 여기저기 씌어진 작은 논문들을 모으는 작업을 했죠. 1980년대 중반에 그런 작은 논문들을 모아 분석해보니까 의외의 결과가 보이더군요. 수컷 못지않게 암컷도 수많은 수컷을 상대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관찰되었죠. 물론 혼자서 엄청나게 많은 암컷을 상대하는 화려하고 기막힌 수컷 물범은 암컷 100마리 정도를 거느립니다만, 슈퍼 수컷 같은 암컷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한 둥지에서 나오는 새끼들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니 아빠가 다 다른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런 암컷들은 분명히 여러 수컷을 상대한 거죠.
그렇다면 암컷이 왜 그런 짓을 할까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수컷은 양적으로 문제를 푸는 경향이 있고, 암컷은 질적으로 풀려고 한다” 암컷이 좀더 많은 수컷을 상대해야 할 이유, 그리고 상대하면 득이 될 이유들을 나름대로 쭉 정리해보았더니 열 가지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한 수컷만 상대했을 경우, 그 수컷이 수태할 능력이 없는 수컷이면 암컷은 엄청난 낭패를 보는 거죠. 실제로 인간 사회에서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병원에 가서 원인을 조사해보면, 남자한테 문제가 있는 경우가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결혼제도라는 것에 묶여 있으면, 그 여인은 멀쩡한데도 자식을 못 낳는 거죠.
자연계에서도 그런 위험 부담을 분명하게 줄이려면 하나 이상의 수컷을 상대해야 되는 거죠. 또 흑백이 분명히 가려지지 않는 상황이라도, 어떤 수컷은 수태 능력이 월등하고 어떤 수컷은 좀 떨어질 수도 있죠. 이때 암컷은 여러 수컷을 상대하면서 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수컷의 유전자를 받을 수 있는 거죠. 만일 암컷이 수컷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암컷이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수컷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순서대로 짝짓기를 하는 것이죠. 짧은 시간에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하면 그 수컷들의 정자들이 암컷의 몸 속에서 경쟁을 하잖아요. 이른바 ‘정자 경쟁’ 또는 ‘정자 전쟁’이라고 하는 방법이죠. 이런 것을 쭉 늘어놓아보면 결국 암컷이 수태 가능성에 대한 걱정을 하긴 합니다만, 그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질적인 문제입니다. 질적으로 우수한 수컷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입니다. 양적인 전략만 진화를 해야 한다는 법은 없죠.
최재천 이성은 끌리지 말라는데, 감성이 마냥 끌고 달아나는데 어쩌겠습니까. 몇 년 전 BBC에서 찍은 다큐멘터리에 ‘미어캣’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동물이 등장했어요. 아프리카 초원의 바위 위에 서서 침입자들을 살피는 무척 귀여운 놈들이에요.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 나오는 티몬이 바로 그 녀석입니다. 그 미어캣 한 가족의 이야기를 추적한 내용이에요. 그 가족은 오순도순 잘 살다가 어느 날 포식자들에게 대부분이 잡아먹히고 말죠. 남매만 살아남아 함께 미지의 세계로 이동해가는 거예요. 온갖 고생을 겪다가 먼 곳으로 이동한 끝에 다른 미어캣 가족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가족의 수컷이 새로 온 수컷을 굉장히 못마땅해합니다. 하지만 그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그 가족의 암컷이 다른 데서 온 그 수컷하고 잠자리를 같이하는 장면이에요. 참 신기하죠. 자기가 속해 있는 가족 중에도 수컷이 있는데, 그 수컷을 거부하고 어디서 굴러들어온 수컷을 받아들입니다.
동물계를 보면 사실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아주 철저하게 발달되어 있어요. 그래서 새의 경우 암컷이 성장하면 자기 동네를 떠나는 게 철칙입니다. 포유류는 수컷들이 다른 지역으로 나가요. 혹 잡아두어도 그 안에서 짝짓기를 거의 안 해요.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서 타향살이를 하면 분명히 손해를 많이 볼 텐데도 떠납니다. 근친상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응현상이라고 봐야겠죠.
「도정일ㆍ최재천 지음,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p313~314,㈜휴머니스트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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