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경영

뒷담화 이론

휴먼스테인 2016. 11. 25. 07:39

뒷담화 이론

 

두 번째 이론 또한 우리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으로서였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달할 가장 중요한 정보가 사자나 들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40~50명 정도의 사람들 사이에서 수시로 변해가는 관계를 저장하고 추적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50명으로 구성된 무리에는 1,225개의 일대일 관계가 있으며 이보다 복잡한 사회적 조합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모든 유인원은 이런 사회적 정보에 예리한 관심을 나타내지만, 이들에게는 효율적으로 소문을 공유할 수단이 부족하다.

네안데르탈인과 원시 호모 사피엔스 역시 소문을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1

뒷담화이론은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무수히 많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얘기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신문 칼럼이든 마찬가지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역사학 교수들이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해 대화할 것 같은가?

핵물리학자들이 휴식시간에 쿼크에 대한 과학적 대화를 나눌 것 같은가?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적발한 교수, 학과장과 학장 사이의 불화, 동료 중 하나가 연구기금으로 렉서스 자동차를 샀다는 루머 등을 소재로 한 뒷담화를 떠든다.

소문은 주로 나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아마도 뒷담화이론과 강변에 사자가 있다이론은 둘 다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전설, 신화, ,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원숭이를 설득하여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갖게 될 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왜 중요한가?

허구는 위험한 오해를 부르거나 주의를 흩뜨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요정이나 유니콘을 찾아 숲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버섯이나 사슴을 찾으러 들어간 사람보다 생존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존재하지도 않는 수호정령에게 몇 시간씩 기도를 한다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아닐까?

그럴 시간에 먹을 것을 찾아다니거나 싸우거나 간통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시공간을 초월해 과거ᆞ현재ᆞ미래가 하나로 존재하는 장소-옮긴이)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개미나 벌도 많은 숫자가 모여 함께 일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들의 일하는 방식은 경직되어 있으며 그것도 가까운 친척들하고만 함께한다.

늑대와 침팬지의 협력은 개미보다는 훨씬 더 유연하지만, 협동 상대는 친밀하게 지내는 소수의 개체들뿐이다.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개미는 우리가 남긴 것이나 먹고 침팬지는 동물원이나 실험실에 갇혀 있는 데 비해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유발 하라리지음,사피엔스,p46~49,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