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오파트라
남성들은 물론 고대 세계 전체를 자신의 매력으로 사로잡은 여인이 있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가장 극적인 유혹의 기술을 가진 여인으로서
삶 자체가 유혹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을 유혹하고 정복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69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위 계승 서열3위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그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최고 수준의 학문들을 접했고,
문학, 수사학, 철학, 수리학, 기하학, 천문학, 의학, 승마술, 그림, 노래, 수금 연주 등
다 방면에서 학식과 재능을 과시했다.
또 어학에도 탁월해서 이집트어, 희랍어 등 8개 국어에 능통했다.
그녀는 이미 10살 남짓한 때부터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정치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는 언니 베레니케에 의해 아버지가 축출당하자
아버지와 함께 로마로 피신해서 살다가 로마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집트로 돌아와 베레니케를 처형하고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기원전 51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등극해
당시 10살이었던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지지하는 세력이
호시탐탐 자신의 축출을 노리고 있음을 알고 단호하게 그와 배후 세력들을 제거해버렸다.
클레오파트라는 유혹의 힘으로 국가를 유지한 여왕이었다.
그녀의 왕권 획득과 유지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는 카이사르였다.
그녀는 화려한 언술과 다방면에 걸친 박식함으로 카이사르를 유혹했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카이사리온까지 얻었다.
당시 52살의 노회한 장군이었던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가 입을 떼는 순간
단번에 그녀에게 사로잡혀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축출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이집트를 되돌려준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유혹해 왕위를 얻고 왕위를 지킨 셈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는 마치 신과 여신처럼 꾸미고
나일 강을 항해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후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아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티베레 강변에 저택을 마련해주고 신전에 그녀의 황금 전신상을 세웠다.
그러나,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클레오파트라 역시 위기에 몰렸다.
결국 그녀는 이집트로 돌아왔지만 그 공백도 오래 가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암살 세력이 진압되고 새로운 강자들이 득세하자
또 다시 유혹의 전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사실 이는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번에 그녀가 택한 사람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안토니우스는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징벌하기 위해 이집트로 향했으나
나흘간이나 계속된 매혹적인 향연 앞에서 넋이 나가
임무까지 팽개치고 그녀를 따라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1년간 그곳에 머물면서 완전히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의 노예가 되었다.
보다 못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최고의 미녀였던 자신의 누이를 그곳으로 보냈다.
결국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으로부터 끌어내
로마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와 결혼까지 했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3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던진 유혹의 그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유혹을 좇아 다시 이집트로 돌아와 클레오파트라의 요구대로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쌍둥이 남매를 합법적인 자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이집트 왕국의 계승자로 지명할 것을 약속했다.
더 나아가 그녀와 안토니우스는 로마-이집트 연합 왕국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결국 옥타비아누스의 로마 제국과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의
로마-이집트 연합 왕국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악티움 해전에서 승부가 갈리면서 패배한 클레오파트라는
로마로 끌려가는 치욕을 피해 이시스 여신으로 분장한 채
스스로 코브라에 물려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극적인 유혹의 화신으로서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녀는 명목상으로는 두 남자, 즉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지만,
실은 당시의 전 세계를 유혹한 것과 다름없었다.
또 그녀는 그 유혹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 했다.
그렇다면 클레오파트라가 가졌던 유혹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전해 내려오는 대로 미모였을까?
사실 그녀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절세의 미녀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독특한 화장법이었다.
그렇다면 화술은 어땠을까?
실제로 그녀는 박식했고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입을 여는 순간 카이사르를 사로잡을 만큼 화술이 대단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진정한 유혹의 무기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상을 넘어선 쾌락’이었다.
근 100일간 계속된 나일강 여행을 통해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에게 ‘상상을 넘어선 쾌락’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유혹은 본질적으로 쾌락을 무기로 삼는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고,
욕망을 자극하고,
혼돈을 조성하며,
심리적인 굴복을 얻어낸다.
클레오파트라는 그 쾌락을 상상의 벽을 넘어 펼쳐 보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했던 그 방법들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정진홍지음,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1,p189~193,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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