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1,22)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막 1,27)
예수는 ‘복습 교사’가 아니었다.
성전에서의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사람들은 그에게, 그것도 사제들의 권위가 그 어느 곳보다도 실감 나게 통하던 성전 뜰에서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막 11,28-29.33)
그러자 예수는 율법이나 전승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더더구나 그전의 어느 율법 학자들을 대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물론 예수도 성경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좀 더 설명하거나
(막 12,10;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1)'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2)머릿돌이 되었다.
막7,6-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3)'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질문을 던지거나
(막12,36-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친히 이렇게 말하였다. 11)'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기 위함이었지 엄격한 의미의 논증이나 자기주장의 정당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그는 요한 복음서 7장 15~17(15, 유대 사람들이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학식을 갖추었을까?"
1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17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절에 전해진 그의 말씀대로,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의 주장의 정당화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직접 들이댔다고 하겠다.
그는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하여 감히 하느님의 권위에 직접 호소한 것이다.
자신의 가르침에 놀란 유다인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만 하면, 이 가르침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예수와 역사,샤를르 페로지음ㅣ박상래옮김,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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