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정치학과 신학 그리고 철학에서 어떤 해결점을 찾아보려고 보낸 세월이었다.
지금은 가급적 정치에서 멀어지고 싶고 더더욱 한국정치에서는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발버둥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한국이 해방 후의 혼란의 시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걸 보면서도 그 문제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인지를 전혀 모르는 일부 아니 절반의 무지한 민초들을 보면서 또다시 절망했었다
이번에 그 사건과 그 뒷얘기들을 담은 책이 나왔고 내가 항상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장정일 선생이 추천사를 쓰셨다.
웬만하면 정치에는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만 이 책은 일단 주문했다가 한국가면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아래 글은 '시사인 2015.10.10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에서 발췌한 내용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추천사는 응당 저자나 출판사와의 안면을 뿌리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수호할 만한 그 책의 가치 때문에 쓰여야 한다. 하지만 문학작품 뒤에 붙은 허다한 해설이 ‘주례사 비평’이라는 혐의를 받아온 것처럼, 원고지 2~3장 분량의 추천사 역시 구리기는 마찬가지다. 추천사가 실리는 ‘표 4(뒤표지)’는 그것을 쓴 사람의 명성에 따라 고료가 환산되는 ‘상징 자본’의 증시(證市)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오래전에 ‘추천사, 쓰지도 받지도 말자’주의자가 되었다. 그런데 17년 만에 신석진 외 3명이 함께 쓴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생각비행, 2015)에 추천사를 썼다. 당연히 금전적 보상은 없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추천사로 인해 ‘내가 손해 본다(희생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일에도 기동하지 않겠다! 내가 쓴 추천사의 첫 번째 문단은 이렇다.
“평생 읽은 책을 ‘기쁨’과 ‘슬픔’이라는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면, 전자는 한 상자고 후자는 한 수레다. 그 한 수레의 책 가운데 이번에 읽은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가장 슬픈 책이다. 추천사를 부탁받으면서 통합진보당을 단단히 비난하려고 했지만, 1장을 채 읽기도 전에 가슴과 말문이 함께 막혔다. 정치에 관한 책이 이토록 마음을 아프게 할 줄 몰랐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장수막걸리를 마시고 또 마셨다.”
김선수가 대표 집필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무엇이 문제인가?>(도서출판 말, 2015)와 이재화의 <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글과생각, 2015)은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이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보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입으로 말한다. 2012년 12월4일, 대통령 후보 초청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일본에 충성 맹세한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다. 박근혜 후보는 국가 보위를 약속하는 취임 선서를 할 자격이 있나?”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새누리당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문했다. 흥미롭게도 선거 직후 국정원과 기무사 등에 의한 불법 선거운동이 드러나자 통합진보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앞장서 고발했고, 수세에 몰린 국정원은 2013년 5월10일과 12일에 있었던 이석기 전 의원의 강연 모임을 내란음모 회동으로 몰아갔다.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이 날조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공중분해된 통합진보당 당원 네 명이 함께 쓴 책이다. 한때 ‘친노(열린우리당)’ 정치인의 입에서 ‘우리는 폐족’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그들의 정치적 시민권은 한 번도 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았다. 반면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 선고를 받은 통합진보당은 대체 정당 설립은 물론 정당의 이념을 전파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집회·시위마저 불법화되었다.
앞으로 10만명의 옛 당원을 따라다닐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낙인은 이들을 이 시대의 보도연맹원으로 만든다. 추천사의 두 번째 문단이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운동의 관성’과 제도 정치에 진입한 ‘대중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과 모순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의 속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운동의 관성’이 ‘이석기 내란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보수 세력이 덤터기 씌웠던 ‘종북’이나 ‘주체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논객이라고 불리는 작자들은 ‘PD(민중민주)-NL(민족해방)’이라는 운동권의 해묵고 단순한 프레임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보수 세력의 날조를 한층 설득력 있게 보충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석기 의원이 구속되고 통합진보당이 풍비박산한 데에는 박근혜 정부와 보수 세력의 일사불란한 대오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으나, 이런 때를 타서 자신을 초당파적인 지식인으로 부각시켜보겠다는 유명 논객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도 한몫 했다. 이 떠버리들은 진보정당이 제시한 강령과 정책을 이해하고 심도 있게 비판하기보다는 옛날에 경험했던 ‘PD 대(對) NL’이라는 구도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진보 진영을 ‘종북 진보’와 ‘반북 진보’의 구태의연한 대결장으로 극화(劇化)한 보수 언론을 거들었다. 그 결과 이석기 그룹(경기 동부)은 좌파 진영 안에서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한 채 고립되었고, 떠버리들은 빌라도 흉내를 내면서 손을 씻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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