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청빈과 자비와 자선을 엄격하게 실천하는 비엥브뉴 주교에게
‘시대를 앞서가는’ 상원의원은 다음과 같이 비아냥댄다.
“하하 천국 같은 건 아무 데도 없어요. 신이란 엄청난 조작이죠.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서 이런 말을 하지않죠.
친한 친구끼리 술좌석에서만 해요.
괴로워할 것인가, 즐길 것인가.
어차피 허무로 끝날 건데 선택은 간단하죠.
하류계급, 거지나 칼 가는 사람이나 부랑자에게는 무엇인가 있어야겠죠.
하느님은 빈털터리에게만 필요한 겁니다.”
빅토르 위고는 탐욕과 적개심이 판치는 격변기에 장발장처럼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변혁을 이끈다는 잘난 자들이 아니라
우리 안의 신성을 두려워할 줄 아는 비엥뉴브 주교 같은 이들이라는 걸 말하려고 이 책을 썼음에 틀림없다.
1%만 빼고는 모두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 돼버린 시대에
이 책과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랜 동안 상원의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문정우의 독서본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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