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역사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 루이 16세의 올바른 정치

휴먼스테인 2014. 8. 12. 03:58

루이 16

루이 16세는 국정을 개혁하려 애를 쓰고도 민심을 얻지 못한 군주의 전형이다. 

금속 공예 애호가, 뚱보, 통풍 환자, 바람둥이 여자의 남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혁명의 피해자인 그는

역사책에<패자>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를 <승자>로 통하는 군주들,

예컨대 그의 유명한 조상인 루이 14세와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아마도 우리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루이 14세는 귀족 계급의 지지를 받았고 귀족들을 베르사유 궁에 자주 초대하였으며 전대미문의 사치를 누리며 살았다.

또한 루이 14세는 막대한 군비만 드는 무용한 전쟁을 벌였고,

군대가 네덜란드에서 익사하는 등 패전을 거듭함으로써 프랑스 재정을 파탄 상태로 몰아갔다.

게다가 그는 민생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서 두 차례의 기아가 온 나라를 휩쓸게 했고(2백만 명 사망),

민중의 모든 반란(특히 세벤에서 위그노파 신교도가 일으킨 카미자르의 난)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고 칭했지만, 국고를 바닥내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채로 죽었다.

그의 후계자인 루이 15세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루이 16세는 국가재정이 나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먼저 나라의 경제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귀족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장관들의 도움을 얻어 더 합리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고, 백성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청원서를 작성하게 했다.

어느 마을에서나 백성들은 불만과 고충을 토로하도록 권유 받았고, 그들의 진술은 청원 문서에 기록되었다.

군주가 이렇게 백성들에 직접 의견을 묻고, 그럼으로써 지방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진정으로 알게 된 것은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개혁을 시도하다가 적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의 불행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한 백성들은 점차 목소리를 높여 나갔다.

루이 16세는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의 글에 공감하면서

프랑스를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나라로 만들고 싶어했고 국정 개혁을 계속 추진하고자 했다.

그는 고문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임금이다.

그는 농노제와 인두세와 부역 제도(아직 널리 행해지고 있던 중세의 관행)을 폐지했고,

종교적인 관용을 재확립하였으며(프로테스탄트들은 그때까지 박해를 받고 있었다),

자의적인 체포를 금지했고,

결혼한 여자들이 남편의 허락 없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으며,

평등주의적인 직접세를 도입했다.

또한 백성들이 기아에 시달리지 않도록 감자 재배를 장려하기도 했다.

루이 16세는 멀리 앞을 내다볼 줄 알았고 지리와 항해에도 관심이 많았다.

미지의 대륙들을 탐험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기여했고,

<원주민을 학대하지 말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지시를 처음으로 내렸다.

또한 라파예트를 매개로 삼아 최초의 근대 혁명인 미국독립전쟁을 지원했다.

1789년 파리에서 시민들이 처음으로 궐기했을 때, 그는 군대가 시민에게 사격하는 것을 금지했다.

프랑스인들에게 다른 프랑스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결국 그는 혁명을 막지 못했고 일시적으로 입헌 군주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구금된 뒤에

국민 공회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단두대에 올랐다.

그가 사형 집행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라페루즈 백작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는가?>였다.

라페루즈 백작은 루이 16세의 명을 받고 태평양 탐험에 나섰다가 몇 해 전에 실종된 탐험가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평가해 보면,

루이 16세는 혁명가를 자처했던 숱한 사람들 못지 않게 백성의 이익을 지켜주려 노력했고

국정 개혁에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정당하게 평가해 준 적이 없다.

반면에 <태양왕> 루이 14세는 과대망상에 빠진 난폭한 독재자일 뿐이었고, 그런 점에서 루이 16세와 정반대였다.

 

에드몽 웰즈,『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제7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이세욱옮김,3인류4,p49~52,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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