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문어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감각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뇌의 기억 용량도 엄청나게 크다.
감각이 그렇게 예민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점만 놓고 보면,
문어는 인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어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부모들의 행동 때문에 이 종의 강점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마치 이 종의 유전자에는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한 암호가 새겨져 있는 것만 같다.
암컷은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오면 이내 죽어 버린다.
수컷은 새끼들을 보면 식욕이 발동해서 새끼들 가운데 일부를 잡아먹고 아주 도망쳐 버린다.
이렇듯 문어의 세계에는 부모의 사랑도 없고 자녀 교육도 없는 셈이다.
새끼 문어들은 부모의 경험을 전수받지 못한 채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 가야 한다.
세대마다 비슷한 생존 경험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종은 감각기와 뇌만 놓고 보면 수만 년 전부터 진화할 준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진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만약 부모 문어들이 새끼들을 놓아둔 채로 일찍 죽거나 도망치지 않고,
대대로 새끼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수한다면, 문어들의 문명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 질문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이런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부모 세대가 제대로 교육을 하지 않고 우리의 기억이 전수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의 문명은 어떻게 변할까?
에드몽 웰즈,『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제7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이세욱옮김,제3인류2,p185~186,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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