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인질 위기 1979년 11월4일, 500여명의 이란인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난입해 90명의 외교관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 사건으로, 이 위기는 444일간 이나 이어졌다. |
1979년 11월 발생한 이란 인질위기는 금의 장기적 가격 동향을 바꿔놓았다.
연방준비은행은 위기가 발생한 후 즉시 미국에 있는 이란의 금 비축고를 동결한다고 선포했다.
이 조치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만약 이란의 금이 동결된다면 미국에 보관한 자신들의 금도 안전하지 않을 터였다.
따라서 각국은 앞 다투어 금을 구매하고 직접 본국으로 옮겨갔다.
이란은 더 보란 듯이 국제시장에서 많은 금을 사들였다.
이라크 역시 가만있지 않고 사자 세력의 대열에 합류했다.
금값은 몇 주 안에 1온스당 850달러라는 고가를 기록했다.
그동안의 모든 변화 과정을 지켜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회복해야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1981년 1월, 레이건은 취임하자마자 의회에 ‘금위원회(Gold Commission)’를 조직해
금본위제 회복의 타당성을 연구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국제 금융재벌들의 금기를 직접적으로 깨는 조치였다.
1981년 3월 30일, 백악관에 입주한 지 겨우 69일 만에 레이건은 존 힝클리라는 팬에게 저격을 당했다.
총알은 심장에서 겨우 1밀리미터 떨어진 곳에 박혔다.
저격범은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주의를 끌려고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을 저격한 대부분의 범인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판정받았다.
이 총은 레이건 대통령을 명중시켰을 뿐 아니라 금본위제를 부활하려는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깨버렸다.
1982년 3월, 17인으로 구성된 금위원회는 15대2라는 표결로 금본위제 부활을 부결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결과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미국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감히 금본위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화폐전쟁, p296~297,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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