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진 전날 밤에 팔금도의 늙은 객주 이억수를 데려왔다.
무릎에 힘이 빠져 누워 있는 노인을 수졸들이 들것에 실어왔다.
이억수를 향도선에 태웠다.
이억수는 팔금도 삼대 객줏집 장손이었다.
소싯적부터 노꾼들을 부려 배를 타고 다니며 연안 고을들을 돌며 건어물, 옹기, 죽제품, 소금을 교역했다.
영암, 해남, 강진, 보성에 이르는 연안 물길을 이억수는 땅을 딛고 다니듯 했다.
그는 여러 갈래 미세한 물길들의 개별적 질감을 알고 있었고, 물길들이 바다에서 합치고 갈라서는 흐름을 알고 있었다.
발진 직전에 나는 선창에서 이억수에게 물었다.
- 수군의 일이 지금 다급하다. 네가 이 안개 속으로 물길을 찾을 수 있겠느냐?
- 해가 오르면 훨씬 걷힐 것이니 그 동안만 더듬으면 해남까지는 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뭍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 물길을 찾을 수 있느냐?
- 몸이 아는 일입니다. 몸이 아는 시간과 배의 속도를 가늠해서 위치를 잡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바람이 없어 물길이 다들 제 성질로 돌아왔고, 또 가끔씩 안개 사이로 섬 그림자가 보이기도 하니, 배를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격군을 다그쳐서 빠르게 나가지는 마십시오.
향도선에 격군 10명을 붙였고 사부 20명을 태워 무장시켰다.
이억수의 늙은 몸이 안개 속으로 함대를 이끌었다. 함대는 앞선 자의 허리춤을 붙잡고 가는 장님의 대열처럼 뒤뚱거렸다.
『김훈 지음, 칼의 노래, p287,288,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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