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경제

카토피아 vs 카디스토피아

휴먼스테인 2020. 9. 28. 15:45

카토피아 vs 카디스토피아

 

사람이 운전을 안 하게 됐을 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카토피아CarTopia가 있습니다. 세상이 정말 좋아집니다. 자동차들은 최적화되어 거리를 다닙니다. 기름도 적게 들겠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차들은 5~10미터의 간격을 두고 운행합니다. 위험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인자동차들은 바짝 붙어갈 수 있습니다. 10센티미터 간격으로 다닐 수도 있어요. 이렇게 차들이 다니면 플래툰platoon 효과에 의해 공기저항이 줄어듭니다. 사이클 경기를 보면 항상 앞 선수 뒤에 바짝 붙어서 달립니다. 왜냐하면 앞 사람이 공기를 다 막아줘서 뒷사람은 공기저항이 확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시속 30킬로미터가 넘어가면 공기저항은 꽤나 큰 저항력이기 때문에 공기저항이 줄어들면 효율이 높아져요. 이렇게 자동차들이 플래툰 시스템으로 달리면 뒤에 있는 차들은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면 차가 90퍼센트 줄어들고 사고율도 90퍼센트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는 지금보다 훨씬 가벼워져도 됩니다. 사고가 거의 안 나니까요. 현재의 자동차 내부에 있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안전을 위한 장치들입니다. 사고가 많이 나니까 자동차는 튼튼해야 하고, 에어백도 있어야 하죠. 지금까지의 도로는 위험하니까 그 많은 안전장치들을 달고 다녔는데 만약 사고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안전장치를 모두 갖출 필요는 없어집니다. 따라서 기계가 엄청 가벼워지겠죠. 그럼 에너지 효율도 올라갑니다. 선순환positive feedback이 계속 일어나죠.

 

 

반대로 카디스토피아CarDystopia도 있습니다. 에너지 사용량은 (효율성) x (사용시간)입니다. 앞서 계산했던 카토피아의 입장은 효율성이 좋아진다는 것만 봤고, 사람들의 생활은 똑같을 것이란 입장이었죠. 하지만 무인자동차가 생기면 사람들은 여행을 즐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왜일까요?

무인자동차는 여행에 아주 최적화된 기술입니다. 현재는 이동할 때 두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내 차, 대중교통,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내 차는 사생활 보호가 되는 편안함이 있는데 직접 운전하는 게 귀찮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또 대중교통은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지만 사생활 보호도 안 되고 출발지까지 직접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죠.

그런데 무인자동차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줍니다. 내 차처럼 가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이기도 한데, 운전도 안 합니다. 결국 이동하는게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해지겠죠. 편하면 더 많이 하고 오래합니다. 지금은 5~6시간 이상 운전하기 힘듭니다. 기껏해야 10시간 정도가 최대치겠죠. 그런데 무인자동차로 여행하면 1주일씩 운전도 가능합니다. 어쩌면 차 안에서 사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동부에서 서부까지 차를 타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운전은 기계가 하고 사람은 안에서 놀고 자면 되니까요.

 

사용시간이 늘어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운전을 못 하는 사람도 차량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나이든 사람, 장애인, 어린아이들도 다 차량을 이용할 수 있게 되겠죠. 자동차의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사회에는 디스토피아겠지만 자동차 산업에는 유토피아입니다. 자동차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산업의 입장에서는 수익이 늘어나는 형태니까요. 이렇게 자동차의 사용시간과 자동차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카디스토피아입니다.

「김대식지음,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도서출판사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