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백제에게는 신라가 ‘한 핏줄’이 아니라 당나라와 같은 ‘외세’였을 뿐이다.
삼국이 공동의 운명체이거나 통치체제였다는 인식은 별다른 근거가 없다.
사실 엄정하게 생각하면 삼국의 나라 안에서도 그곳의 주민들이, 소수 지배계층을 제외하면,
자신을 각각 ‘백제인’, ‘신라인’, ‘고구려인’이라고 인식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백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배층의 언어와 피지배층의 언어는 달랐다.
‘신라인’이라는 정체성은 왕족 및 귀족에게만 허용되는 의식이었다.
오늘날 백제, 고구려, 신라는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인식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국병합’이었을 것이다.
역사의 우연과 현재의 관점을 과거로 투사하는 국사 및 비교적 일관된 통치체의 지리적 경계,
특히 고려 및 조선의 국경 덕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삼국을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인식한다.
하지만 삼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삼국을 아우르는 더 큰 통치제에 대한 정체성 및 충성심을 가졌다는 실증적 근거는 없다.
삼국이 ‘우리’라는 인식은 민족주의 사학이 고대에 투사한 관념에 의해서 생겨난 의식이다.
「권혁범지음,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p18,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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