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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과 서정주 그리고 푸르른 날

휴먼스테인 2017. 5. 13. 23:17

송창식과 서정주

 

 

송창식, 하면 서정주도 빠뜨릴 수 없다.

내가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던 어느 봄날이었다.

그때 시인이던 담당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하나로 본다면 저는 서정주 시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정치적인 부분을 제하고 과연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 싶지마는 그의 것보다 더 시다운 시는 없어 보인다(<동천>이라는 시를 떠올려 보라. 시의 전형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송창식이 중학생일 때 서정주 시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때 시인의 시 짓는 방법을 듣고 송창식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인기 가수가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우연히 서정주 시인의 집에 들르게 되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 친구는 시인 문정희였다. 둘은 라디오 방송을 함께했다.

얘기를 나눠 보니 또래고 자신의 친구와도 친한 사이였다.

하루는 방송이 끝나고 송창식이 그녀에게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어딜가야 한단다. 알고 보니 서정주 시인에게 간다는 것이었다.

서정주를 평소 너무나 인상 깊었던, 사회적인 선배라기보다 훌륭한 조상처럼 여겼던 그였기에 따라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인사드리고 싶다면서.

 

전화해 보니 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서정주와 만나게 되었다.

그 뒤로 서정주는 그를 종종 부르곤 했는데 실제 만난 횟수는 열 번 정도라고,

놀라운 건 서정주 시인 역시 송창식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거다.

송창식을 만나자마자 술 한잔 하더니,

내 시 중에 말이야. <푸르른 날>이 노래로 할 만하지.”라고 말했다.

원래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시를 가수에게 허락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클래식 작곡가에게도 절대 주지 않았다.

그만큼 송창식을 유일하게 인정했던 것이다(‘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가사에 그가 우렁차게 내뱉는 발성이 어우러진 이 곡은 가요 이상의, 가곡과도 같은 여운을 준다.)

 

“아, 이 양반이 <푸르른 날> 가지고 곡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래 갖고 난 그 분한테 서비스한 거예요. 그래서 다음에 맨들어 갖고 괜찮냐고 하니깐~.’ 그러더라구요.

훗날 서정주 시인도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노래 참 기막히지. 내 시에 곡을 붙였다며 기타까지 메고 집으로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데 후련하게 확 터진 소리면서도 뭔가 서럽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눈부신 푸르름 속에도 설움이 있는데 우리 삶이야 오죽 서럽고 불쌍하겠는가.”

 

예민한 부분이었으나 서정주 시인의친일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그 당시를 친일 아니면 배일이었다고 했다. 중간은 없는 게 아니냐면서.

그 당시 배일하는 문인이 어디 있었나? 그럼 이름이 없는거지, 라며 이광수의 이름을 들어 설명했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윤동주 시인은 시인으로는 당시에 이름이 없었거든요. 배일했던 거죠. 그땐 시를 쓴 걸루다가 배일을 했으면 시인으로 유명해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은 안 유명했죠. 죽은 후에 윤동주라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고 밝혀지고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윤동주 시인이 시인으로서의 자질로는 최곤 거 같아요. 근데 배일이라 유명해지진 못했지.”

 

그런데 왜 서정주 시인을 조상처럼 생각한다는 걸까.

윤동주 시인은 젊었을 때 세상을 떠나 늙어 쓴 시가 없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쓴 시가 훨씬 훌륭했을 거라고.

, 자질로 훌륭하다는 거고 작품이 최고라는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시인들도 나이 먹어 쓴 시가 없지 않느냐며 서정주 시인의 시만 그렇게 나오게 됐다며 말을 이었다.

그분이 옛날에 썼던 유명한 시보다는 칠십 넘어 쓴 시들이 다 좋아요. 막 객소리 같은것도 있다구요. 시 같지도 않고. 막 그냥 주저리주저리 잔소리같이 해논 것도 있다구. <질마재 신화> 이후에……, 그런 시들이 난 더 좋아요. 그전 사람들과 그전 시는 다 젊은 사람들의 감정 표현을 쓴 거고, 그렇게 감성으로 쓰는 시인 중에서 자질로는 윤동주 시인이 최고였다는 거죠. 시 자체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으니까.”

「박재현지음, 송창식에서 일주일을,p108~109,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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