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듣는 사람은 처음 듣는 것입니다.
설사 같은 말을 다시 듣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번 말해서는 머릿속에 잘 기억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반복하세요.”
김 대통령은 예를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같은 예시를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독창성을 얘기할 때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다.”
고 되풀이했다.
다른 예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저것 사례를 들면 헷갈릴 것을 염려해서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레이건이 민주당 먼데일Walter Mondale을 이긴 이유도 김 대통령은 이렇게 설명했다.
“먼데일은 다양한 주제의 연설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레이건은 두세 가지 내용만 되풀이 했다.
이에 대해 ‘레이건은 콘텐츠가 빈약하다’며 비판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레이건은 괘념치 않았다.
결국 먼데일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유권자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레이건의 말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2007년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기공식 행사가 줄줄이 있을 때,
혁신도시의 취지를 매번 달리 설명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도 평소 말을 할 때는 반복 화법을 자주 썼다.
“맞습니다. 맞고요”가 대표적이다.
“민생과 경제를 구별해야 합니다.”
“경제는 경제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도 노 대통령이 자주 썼던 반복 화법의 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일반인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서민의 언어를 쓰고자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언어’를 쓰라고 옥조였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막하자는 것이지요?”라고 했을 때, “못 해먹겠다.”고 했을 때, “대못질”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도 언론은 대통령의 말이 경박하다, 대통령의 말에 품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군림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 사이에서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런 표현을 써도 되나,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권위가 있어야지 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국민은 ‘서민 대통령’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머릿속에는 ‘강하고 근엄한 대통령’이 대통령다운 대통령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씨는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따로 있는가,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만들었는가.’
그래서였을까?
노 대통령은 깔끔하게 정제된 표현보다는, 진솔하고 투박한 표현을 좋아했다.
우리가 살면서 평소 쓰는 일상어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들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는 세상입니다.”
<1988년 7월 국회 본회의 사회문화에 관한 질문 중>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의『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오는 이 대목은 새겨들을 만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맹세하기 바란다.
‘생리현상을 해결했다’고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똥을 싸다’는 말이 독자들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변을 보았다’고 써도 좋다.”
글은 쉽게 써야 한다.
말과 글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이 갑이다.
설득 당할 것인가, 감동할 것인가의 결정권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그렇다면 쉬운 글은 쓰기 쉬운가? 더 어렵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차라리 어려운 글은 쓰기 쉽다.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고 한 헤밍웨이의 말은 확실히 맞다.
「강원국,대통령글쓰기,p176~178,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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