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정치

YH 사건

휴먼스테인 2015. 4. 28. 15:55

YH사건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경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봉제 합섬 제조업체인 YH무역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한 데 항의하는 여공

200여 명이 798 9일 오전 서울 마포의 신민당사에 몰려와 농성을 벌인다.

(수출이 호황이던 70년대 초반에는 실적이 좋았으나

78년부터 한국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자,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창업주는 수주대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채운 뒤 회사를 부도 처리했다.)

이들 여공들은 회사 측이 은행부채, 이자 등으로 더 이상 회사경영을 할 수 없어

폐업은 불가피하다면서 직장을 떠날 것을 강요하자

87일부터 회사 기숙사에서 항의농성을 계속하다가

경찰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이날 신민당사로 몰려온 것이었다.

(이날 하루 전 88, 고은 시인, 문동환 목사, 이문영 교수 등이

김영삼 집을 찾아가 여공들이 신민당으로 갈 테니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여공들이 김영삼 총재와의 면담을 요청하자,

김영삼은 여공들이 항의 농성 중이던 강당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들이 마지막으로 신민당사를 찾아준 것은 눈물겹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경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YS, 너무 멋져!!!!

이튿날인 810, 정부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주재로 관계자 대책회의를 열어

강제 해산을 의결한다. 박정희는 이를 재가했다.

이날 밤 1040, 여공들 사이에서 수상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찰이 들이닥칠 거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흥분한 여공들은 울며불며 안절부절못했다.

4층에 모여 있던 여공들은 경찰이 투입되면 뛰어내리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여공들이 안절부절하자 YS가 여공들에게 올라간다.

 

          내 이름 석 자와 신민당의 명예를 걸고

조속히 여러분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겠습니다.

경찰이 신민당사에는 절대 들어오지 못합니다.

나와 서른 명의 신민당원들이 여러분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11일 새벽 경찰이 신민당에 최후통첩을 전달했고

이순구 서울시경 국장이 전화를 걸어 총재를 바꾸라.”고 당직자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의 YS

건방지그로 누가 누구보고 전화 받으라 카노? 어이? 이게 머 이런 게 다 있어?”

하며 당사 밖으로 나간다.

당사 밖으로 나간 YS는 마포경찰서 보안과장 김준기 경정이 서성대는 것을 보고

냅다 뺨을 후려갈겼다.

이어 당사 정문 앞에서 황용하 정보1과장과 마주치자 멱살을 잡고 발로 차기까지 했다.

(이 황용하는 나중에 김영삼 정부 시절 경찰청장에 오른다.)

또한, 작전 지휘에 나선 마포경찰서장을 만나자

너거들이 저 여공을 다 죽일라 카나 어이? ! 이런 게 다 있어?”

하며 역시 싸다구를 올려붙였다.

그러나 곧바로 2,000명이나 되는 엄청난 경찰 병력이 신민당 당사로 투입,

여공들을 끌어내리기 시작한다.

여공들뿐만 아니라, 신민당 당원, 국회의원, 심지어 YS까지 개 끌려가듯이 끌려갔다.

작전 딱 23분 만에 상황은 종료됐다.

그러나 경찰이 얼마나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는지,

경찰 진압 과정 중 김경숙이라는 21세의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공이 사망하고,

당시 신민당 대변인 박권흠은 갈비뼈가 골절되었으며

얼굴을 심하게 맞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박용만 의원은 다리가 부러졌으며, 황낙주 의원도 어깨와 다리에 심한 구타를 당했다.

 YS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총재실로 들어온 경찰은 당직자들을 마구 폭행하고

김영삼 멱살을 잡고 끌고 가 차에 태운 뒤,

곧바로 상도동 김영삼의 자택으로 데리고 가서 그날부로 가택연금을 시켜버렸다.

경찰은 이날 172명을 연행했으며 농성 주동자 3명과

문익환, 이문영, 고은, 인명진, 서경석 등 5명을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한다.

한편 신민당은 김경숙 양의 사인 규명과 책임자의 문책을 요구하면서

의원들이 18일간이나 농성을 벌였다.

실로 오랜만에 야당다운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미국의 움직임이었다.

미국은 811일 미 국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경찰의 강제해산조치는 분명히 지나치고 잔혹한 것.”

이었다고 밝히며 책임자의 징계를 강력히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박 정권을 음으로 지원하던 미국의 이 같은 반응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강도 높은 미국의 논평에 대해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내정 간섭이라며

글라스틴 미 대사를 불러 강력한 항의를 하는데

이를 전해들은 미국은 국무성의 잭 캐넌동아시아국 대변인을 통해

국무성은 지난번 성명의 입장을 고수한다.”

미국은 한국 당국이 관련자를 징계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경고성 논평을 날린다.

(이 일로 미국이 박 정권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김재규가 1026일 박정희를 암살한 것에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논평에서 유추한 것이다.)

 

「이동형지음,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p133~136,왕의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