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詩

올해 첫 눈이 오는걸 보면서...

휴먼스테인 2013. 2. 4. 13:21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인문학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0) 2013.04.12
다비드 르 보르통의 <걷기 예찬> 을 설명하면서  (0) 2013.03.13
옥수수  (0) 2013.03.04
한 사람을 사랑했네  (0) 2013.02.19
그 꽃  (0) 20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