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의 이성이 구성해내는 언어적 주장
137억 년 이전의 시간은 무엇인가? 그
것은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팽창하는 우주 밖에 빈 공간이 있는가?
그래서 풍선이 부풀리듯이 팽창하는 경계를 우리가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공간 속의 공간이 팽창하는 것일 수 없다.
우주가 팽창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며
공간 그 자체가 새롭게 생겨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건은 기존의 시간·공간 속에서
우리가 보는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일까?
빅뱅 이후의 매우 사소한 국부적 한 사건에 불과한 것일까?
분명히 그러하다!
최근까지만 해도 서구의 신학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BC 400년의 사건으로 확신했고,
그것이 그해 봄에 일어났느냐, 가을에 일어났느냐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참인지 아닌지 궁금하면 허버트죠지웰즈H.G.Wells, 1866~1946의
『세계문명소사 A Short History of the World』,1992 첫머리를 한번 펴보라).
희랍인들이 이성이 시공간을 초월한다고 믿은 것은
이성이 작동시키고 있는 기하학이나 수학적 계산이나 논리의 법칙이
시간이나 공간의 조건에 무관하게 불변하며 따라서 절대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다.
수학이나 기하학도 불변과 변화, 절대와 상대,
이 따위 언어개념의 대상으로서 존재론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장난이요, 전승된 게임일 뿐이요, 엮음과 풀음의 놀이일 뿐이다.
거기에 하등의 거창한 존재론적·인식론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 비트겐슈타인이 명언을 했다.
언어는 사용일 뿐이라고,
그것은 모든 문장의 의미가 사용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 존재론적 함의나 증명이나 사실과의 대응을 논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성의 힘에 의하여 신
즉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우주의 창조주라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 언어의 게임은 될수 있을지언정 존재론적 사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신이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자”라는 의미는
시공속에 있는 우리의 이성이 구성해내는 언어적 주장일 뿐이다.
하나님은 문화에 따라 역사에 따라 가변적인 관념일 뿐이다.
지금 대기권 밖에 온갖 인공위성이 떠있듯이, 인간이 허공에 띄워놓은 하나님도 여러종류가 있다.
그것도 역사와 지역에 따라 다 다른 하나님들이다.
참으로 가소로운 짓거리들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시공간의 현실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현실적 존재의 족보나 오리진(소종래所從來)도 시공간을 탈출할 수 없다.
「 김용옥, 사랑하지말자,P 174~177, 통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