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과 엄마. (그 아들에 그 엄마)
엄마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다른 집에선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해서 먹는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계란도 딱 세 개 만 프라이되어 나온 것이다.
‘순간 장난하나?’ 생각했다. 속으로 어이없어하며 옆 친구에게 한마디 따지려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난 다른 집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다.
엄마는 손이 그렇게 컸다. 과자는 봉지가 아니라 박스로 사 왔고, 콜라는 페트 병 박스였으며,
삼계탕은 노란 찜통―에 한꺼번에 닭을 열댓 마리 삶아 식구들 먹고, 친구들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을 도는 방범들까지 불러 먹였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완전 재배치되어 있는일, 다반사였다.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그냥 결정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로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작은 책상이나 액자 따위를 살짝 옮겼나 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들은 이사할 때나 옮기는 장롱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끌려 다녔으니까.
오줌 마려워 부스스 일어났다가, 목에 수건 두르고 목장갑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옮기고 있는
‘잠옷 차림 아줌마의 어스름한 새벽녘 차력’의 기괴함은 목격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벽 세시 느닷없이 잠이 깬 후 팬티만 입은 채 장롱 한 면을 보듬어 안고 한달 전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로
장롱을 세 번째 원상복귀시킬 때 겪는 반수면 상태에서의 황당함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난생처음 화장실에 앉아 문 걸어 잠그고 눈물 찔끔거리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 뜯어내고 들어온 것도 그런 엄마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할 액션이었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여 화장실로 도피한 아들.
그 아들에게 할 말이 있자 엄마는 문짝을 부쉈다.
문짝 부수는 엄마 이야기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듣지 못했다.
물리적 힘만이 아니었다. 한쪽 집안이 기운다며 결혼 반대하는 친척 어른들을 향해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 박으면 천벌을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고 일어나던 엄마,
그렇게 언제나 씩씩할 것 같던 엄마가, 보육원에서 다섯 살짜리 소란이를 데려와
결혼까지 시킬 거라고 말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담당의사는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지만 엄마는 그나마 반신마비에 언어장애자가 됐다.
아들은 이제 사십이 됐고 마주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만큼 철도 들었는데, 정작 엄마는 말을 제대로 못 한다.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짝을 뜯고는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쳤던 엄마,
그런 엄마 덕에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로운 오늘의 내가 있음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못 한다. 이제는 아들이 아니라 친구가 하고 싶은데 말이다.
이제는 그게 진짜 제대로 된 부모자식 사이란 걸, 아는데 말이다.
P.S.
내가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는 말.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엄마는 이런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거나
이런 저런 생각이 옳다거나 하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없다.
엄마는 고등학교 수험생 아들의 도시락도 싸주지 않을 만큼 날 방목했다.
당신도 유아원 운영하느라 바빴으니까, 나 역시 수험생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부모 새벽잠을 뺏을 권리가 있나 여겼기에 한 번도 그런 일로 투정 부리거나 야속해 해 본 적 없고.
그리고 그렇게 철저히 날 방목해주었기에, 무엇이든 해도 된다.
그러나 그 결과도 온전히 나의 책임이란 삶의 기본 철학을 일찍부터 터득할 수 있었다.
하여 그 방목에 무한히 감사한다.
하지만 엄마도 맹모삼천지교 따윈 관심 없는 부모였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말에 웃음이 난다.
아니 모친, 솔직히 모친이 언제 날 키웠수, 그냥 크게 냅뒀지. 파하.
『김어준 저, 건투를 빈다, p94~96,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