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거
예민해서 남들의 거친 말투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1. 언제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 문제다.
그 욕설이 당신에게 쓰일 때만 발생한다. 왜냐. 감정이입 때문이다. 해석 기능이 오작동을 시작하는 거다.
물론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한 제3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렇게 감정이입으로 인해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까진 당연하다.
문제는 감정이입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이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자존감이다.
2. 자신의 상황만이 각별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무르다는 방증이다.
자존감이 든든한 자는 자신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
특별하지 않다는 게 스스로 못나거나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무심하다. 누가 나를 무시하지는 않는지 사주경계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고.
이 말은 남이 어떻게 생각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남이 날 나쁘게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남이 날 좋게 생각하면 기분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힘을 낭비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이 못나거나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3. 남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와 조사까지 신경 쓰느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의식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투입해보시라.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다. 모범 답안 따위도 없다. 당신이 스스로 겪고 배워야 한다.
삶 자체가 그렇듯. 당장은 이것부터 명심하시라.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거.’
『김어준 저, 건투를 빈다, p30~32,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