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종교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대한 차이

휴먼스테인 2019. 4. 4. 01:46

특히 캐제만의 이론에 따르면, 역사라는 부류에 속하는 그리스도교의 담화가 교회에서는 비교적 뒤늦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첫 공동체는 예수의 재림을 열렬하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님의 지나간 일생을 이야기해 줄 생각을 거의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임박했다고 하는 종말은 도래하지 않고 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당시의 헬라 세계를 휩쓸던 종교적인 광신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자 생전의 예수의 인물이 희미하게 사라져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종의 전기와 같은 기록을 남겨 두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코린토의 일부 탈선 교우들은 내면적인 영적 체험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나조라 사람 예수의 특이성特異性 곧 그분의 객관적인 실존마저 가리게 되었다.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역사 서술은 이런 부류의 광신주의에 대한 하나의 반동의 산물이라고 한다.

물론 이 가설은 마르코라든가 더구나 루카의 책의 경우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사실 마르코를 읽어 보면 예수의 선포를 회상하면서도 점진적인 교리 교육의 효과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음서는 전기의 형태를 띤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루카의 경우는 역사의 작업을 좀 더 폭넓게 벌이면서 그때 갓 태어난 가현주의假現主義, docétisme에 대항하려던 나머지 어떤 때는 역사주의라는 함정에 빠졌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마르코는 영이 예수 위에 비둘기처럼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루카는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다.”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그런데 마침 모든 백성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니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루카3,22).

마르코의 기사에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상징적인 표현(마치……처럼)이 여기 루카의 복음서에서는 그리스계 독자에게 더욱 실감이나도록 다소 투박하게 수정된 것이다.

 

「샤를르 페로지음ㅣ박상래옮김, 예수와 역사, p470~471, 가톨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