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바이러스의 무서움
지카 바이러스의 무서움
이번에는 ‘지카 바이러스’다.
지난해 4월 브라질에서 유명해지기 전까지 이 친구는 몇몇 전문가만이 겨우 이름을 외는 미미한 존재였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바이러스가 세계를 위협할 조짐을 보인다며 국제전염병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14년 에볼라 발발 때에 이어 2년 만이다.
지카는 광우병·조류독감·사스·라임병·웨스트나일열·뎅기열·항생제 내성 세균처럼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악당의 긴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인은 메르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바이러스 이름을 되뇌게 됐다.
세계 최고의 질병 역사학자인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말대로 선진국, 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전염병 세계화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1947년 과학자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근처 숲에서 포획한 레서스 원숭이 조직에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분리해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숲의 이름을 따서 지카라고 지었다.
근처의 인간과 동물이 면역성을 갖고 있어서 감염되더라도 별로 해가 없는 평범한 바이러스였다. 이 친구는 세계화의 유행을 타고 끈기 있게 활동 반경을 넓혀가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갑자기 ‘포텐’이 터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녀석들에게는 공통의 재주가 있는데, 까다로운 기자만큼이나 인간 사회의 약점을 잘 들춰낸다는 점이다.
아마도 월드컵 때 대거 입국한 게 분명한 지카는 빈부격차가 극심해 공공의료체계가 거의 맥을 추지 못하는 브라질을 만만하게 봤음에 틀림없다.
이 바이러스는 100만명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몸속에 소리 없이 거처를 마련했다.
그 뒤 브라질 못지않게 공공의료가 허술한 남미 여러 나라를 차례로 점령하고 미국과 유럽으로 서서히 영지를 넓히는 중이다.
지금 아메리카 대륙에서 지카 안전국가는 고산지대에 있는 칠레와 동토를 낀 캐나다뿐이다.
지카 바이러스의 발 노릇을 하는 ‘이집트 숲모기’ 역시 고향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이 친구는 노예무역선을 타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아시아로 일찌감치 퍼져나갔다.
시골 출신이면서도 인간이 만든 도시 시설물에 잘 적응하는 재주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대낮에 주로 활동하고 발목을 잘 문다는 정도만 알려졌던 이 모기는 뎅기열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50년 뎅기열이 필리핀에서 변종을 만들어 치사율 5%의 살인마로 돌변하자 덩달아 악명이 높아졌다.
이집트 숲모기와 함께 뎅기열을 옮기는 양대 주역인 ‘흰줄 숲모기(일명 아시아 타이거 모기)’의 성장 스토리도 범상치는 않다.
이 모기는 1970년대 미국 기업이 ‘운동화보다 싼 값으로 재생 타이어를 만들어 팔려고’ 일본과 아시아 각 나라에 산더미처럼 야적된 폐타이어를 수입해오면서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됐다.
이 모기는 미국 비자의 위세를 빌려 터줏대감이던 이집트 숲모기를 몰아붙이면서 순식간에 100여 개 나라로 진출했다.
현재 전 세계 70억 인구 중 절반 이상인 40억명이 뎅기열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매년 미국 인구보다 많은 3억7000만명이 감염되며 50만명이 중증을 앓고 그중 1만2000명이 사망한다.
바로 이 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 숲모기와 흰줄 숲모기가 지카 바이러스 매개 곤충이기도 해서 세계보건기구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흰줄 숲모기는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30여 개 바이러스를 중개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하다.
이 모기는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는데 2013년부터 채집된 7000여 마리 중 절반 이상의 주소지가 제주도였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방랑하다 신기한 재주를 익히는 기연을 얻기도 한다. 감염된 5명 중 4명이 의식하지 못하며, 발병하더라도 가벼운 미열과 두통만 선사했을 정도로 성질이 온순했던 지카에게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었던 듯하다.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으나 임신부를 감염시킨 뒤 태아에게 소두증을 유발할 수 있는 능력을 장착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
소두증에 걸린 태아는 평생 발달장애에 시달리거나 일찍 죽기도 한다.
에콰도르는 자국 여성에게 2년간 임신을 하지 말라고 권했을 정도로 사태는 엄중하다.
태반의 삼엄한 방어막을 뚫고 태아를 감염시키는, 이른바 수직감염 능력을 갖춘 바이러스나 세균은 그리 많지 않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수직감염 바이러스는 바로 매독균이다.
지카가 매독균과 같은 성질을 가졌다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소식이다.
사람 몸에 침투한 매독균은 아무 때나 불쑥불쑥 나타나 종잡을 수 없는 증상을 유발해 의사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지카는 성관계 중 상대에게 옮겨가는 기술도 익힌 것 같다.
미국에서 두 사람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성관계를 했다가 옮는 사태가 발생했다. 체액의 교환만으로도 옮을 수 있다며 브라질 당국은 축제 기간에 낯선 사람과 키스도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태아와 성관계, 즉 인류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지카는 매독이나 에이즈만큼이나 혐오스럽다.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말했던가.
지카는 남미 대륙에 잠재한 제국주의에 대한 해묵은 불신을 깨우고 있다.
어둠의 세력이 남미의 인구를 줄이려고 바이러스를 일부러 살포했다는 음모론이 횡행한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거론되는 두 악당은 록펠러 재단과 로스차일드 재단이다.
두 재단 모두 남미의 자원을 수탈하는 데 앞장섰던 전력이 있어 용의선상에 올랐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이 재단의 의뢰를 받아 이집트 숲모기를 줄이기 위한 유전자조작 모기를 살포하는 실험을 하는 중인 영국 기업 옥시텍에 쏟아지는 눈총도 따갑다.
예전에 록펠러 재단이 농약과 유전자조작 종자를 앞세워 밀어붙였던 농업혁명이 지금도 많은 논란을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누군가 백신 장사를 하려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의심의 불길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순간순간 약삭빠르게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야 있겠지만 누군가 이런 일을 지휘하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이런 일은 몇 가지 사건이 겹치지만 않았다면 만년 동안이라도 일어날 수 없었다.
2014년 각 나라의 국제공항에는 11억명이 도착했다.
그 숫자는 곧 20억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200년 전에 비해 사람들의 이동 거리는 1000배쯤 늘어났다.
바다에는 평균 5400t에 달하는 선박 4만5000척이 떠다닌다.
시사인 441호 2016.03.04 문정우의 활자의 영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