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철학 등

히틀러와 모차르트

휴먼스테인 2015. 1. 13. 16:11

비엔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많은 곳이 이곳을 통해 다른 곳으로 삼투된다.

종교개혁, 표현주의, 나치즘과 같은 이념들이 이 도시를 통해 세상으로 번져나갔다.

지금은 이 도시를 흔히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관문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 도시에서 비자를 받아 체코나 헝가리 등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한때 이 도시에서 화가가 되려고 했다고 한다.

운명이 나를 총통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켈란젤로가 되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반면에 모차르트는 이 도시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히틀러는 파시즘과 대중심리 분야에서 천재가 되었고 모차르트는 작곡과 연주로 이름을 높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대중을 미혹하는 데 천부적 재질을 타고났다는 점이었을 게다.

하기야 그 시대는 무엇으로든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쉬운 때였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절절할 수 있었던 것이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그런 일이 도통 가능하지 않다.

이제 죽음은 TV로 생중계되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되어있다.

과거엔 풍문으로 전해지던 학살이 이제는 상세하고 신속하게 위성을 통해 중계된다.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

비엔나에는 많은 것이 공존하고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흔적과 나치즘의 잔영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이 혼재되어 있다.

이 영세 중립국의 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있다.

이 도시에서라면 아무와도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나서 <오페라의 유령>같은 뮤지컬을 한 편 보고 독일 맥주를 한 잔씩 마신 후에

가까운 펜션에라도 들어가 삐걱거리는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하고

아침이 되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열차에 오르는 그런 상상 말이다.

 

『김영하 장편소설,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p65~66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