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
중학교때 읽은 이영희 교수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그 땐 무슨 책인지도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을 때였다.
형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아마 이 책을 산 것 같았다.
그 책의 첫 글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읽은지가 거의 30년 넘어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 임금님이 벌거벗었는데
다들 임금님보고 옷이 멋있다고 칭찬할 때 오직 아이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해서
임금님이 창피해했다 뭐 이런우화인데
이영희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통제된 나라이길래 임금이 벌거벗었는데도
아무도 말을 못하고 오히려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을 할 수 밖에 없냐’고 했을 때
내 머리를 아주 강하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내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진 이름이 ‘리영희 교수님’이다.
그리고 나서 나 역시 대학생들과 많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고 열심히 외치고 다닌적이 있었다.
그럴 때 마다 항상 고민하는게 이 세상의 부조리를 모르고 사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 만은 아닌게 아닌가 싶은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다.
하도 충격을 받길래....
오랜만에 리영희교수님의 책을 읽다가 나 젊었을 때의 생각이 나서 한번 옮겨봤다.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읽다 말고,
너무도 두려워져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괴로움에 떨면서 꼬박 밤을 샜습니다”라고
쓴 대학생의 심경을 생각해 본다. “……
고등학교까지의 주입식 학교교육으로 구축된 신념체계가
저의 내면세계에서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거꾸로 서 있던 온갖 사물과 관계와 색깔들을
제 모습 제 색깔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차라리 형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서문에서 노신(魯迅)의 글 한구절을 인용했었다.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철판으로 된 방 속에 같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궁리하면서 고민하는” 사람의 심정을 썼었다.
밀폐된 방안의 사람들은 감각과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 상태를 고통으로 여기는 커녕,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태로 착각하고 살아(죽어)가고 있다.
그런 상태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판단능력을 되살려주는 것은
차라리 그들에게 죄악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리영희 지음,인간만사 새옹지마 中에서』